<2편-도산분야><br>"파산기업도 회생가능케 법규 보완해야"<br>판사 시절 진로·일화·동아건설등 성공적 M&A 이끌어<br>국제법과 충돌 문제등 해결 위해 새 솔루션 개발 적극<br>전업했지만 '돈보다 의뢰인 이익 최우선' 신조 지킬 것
“최고경영자(CEO)라는 직업이 얼마나 험난한지 파산부 판사시절 이미 경험했지요.”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홍성준(40·사시 33회ㆍ사진) 변호사는 지난 해 초까지만해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서 잘 나가는 판사였다. 그러다 지평지성의 강성 대표변호사와 인연으로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파산부에 있을 때는 ㈜진로, 동아건설, 일화 등 규모가 큰 기업들의 회생사건을 맡아 ‘판사CEO’ ‘재계 거물’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였다.
◇파산부 판사에서 기업회생 전문변호사로= 홍 변호사는 자연스레 판사이면서도, 누구보다 일찍 ‘비즈니스’ 마인드에 눈을 뜨게 됐다. 유동성 위기 등으로 숨통이 끊어질 위기에 놓인 기업을 되살리기 위해 채권자, 근로자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요구를 조정하는 과정이 일반 민ㆍ형사사건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 홍 변호사는 “법정관리 기업을 맡으면서, CEO들의 고민을 일정부분 이해하게 됐다”며 “요즘처럼 돈줄이 마른 불황기에 경영자들의 심정이 어떨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파산부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에 처한 기업을 어떻게 살려 낼 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 법원이라는 울타리를 박차고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길지 않은 파산부 경험이었지만, 홍 변호사의 실력은 외부에서 더 잘 알아준다. 특히 자신이 맡았던 ㈜진로와 동아건설 매각 주간사였던 메릴린치와 캠코, 딜로이트 등이 M&A 성사 직후 전달한 기념패는 보물처럼 사무실 한켠에 모셔(?) 놓고 있다.
◇회계자료 한눈에 간파= 2004년 홍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로 발령받아 처음 맡은 사건이 ㈜진로 M&A 입찰건이었다. 당시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던 진로는 자체회생이 어렵다고 판단, 제3자 M&A를 통한 회생이 유일한 방안으로 부상했다.
홍 변호사는 진로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들의 입찰서를 받아보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입찰서에 빼곡히 적힌 이자보상배율, 순자산, EVIT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 등 난생 처음 보는 용어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대학 때부터 수십년간 법전만 들여다보다 난생 처음보는 회계용어를 접하니 기가 죽을 만도 했다.
홍 변호사는 그러나 “파산부 판사는 기업의 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해 내야 한다”며 입을 악 물었다. 이때부터 홍 변호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회계학 교과서, 세법전 등 관련 서적을 모조리 들여다 봤다. 사법시험 준비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재무재표를 들여다보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기업의 회계담당자에게 수시로 연락해 괴롭혔다. 대학때도 수재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홍 변호사는 얼마 안가 기업 CFO만큼 재무제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홍 변호사는 “이제 재무제표만 봐도 기업의 건강 정도를 알아낼 수 있고, 대안이 나온다”며 웃었다.
◇맡은 기업마다 성공적 M&A 이끌어= 진로는 막대한 부채 때문에 법정행을 선택했지만,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 1위라는 프리미엄 탓에 수많은 기업이 눈독을 들였다. 당시 진로 인수를 추진했던 기업이 10여개에 달할 정도였다. 인수의향서만 해도 라면박스 14개 분량에 달했다.
홍 변호사는 입찰서를 검토하기 위해 무작위로 박스들을 뜯었는데, 첫번째 박스에 들어있던 것이 나중에 실제 진로 인수자로 결정된 하이트의 입찰서였다. 입찰가격도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놀랐다고 한다. 진로는 그로부터 1년뒤인 2005년 하이트에 인수돼 법정관리를 벗어났다.
홍 변호사는 “입찰서 평가기준은 담당 판사와 파산부 수석부장판사가 회사측의 입장을 반영해 결정하는데, 진로의 경우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만큼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데만 두 달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맥콜’이라는 음료수 제조회사로 유명했던 일화 회생사건도 홍 변호사가 맡았던 주요 사건 중 하나다. 외환위기때 부도처리돼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일화를 한 종교단체에서 7년만에 다시 인수한 것을 두고 세간의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홍 변호사는 “당시 입찰서를 낸 곳은 종교단체가 유일했다”며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5년 이상 파산절차에 밟던 도중, 제3자 M&A를 통해 극적으로 회생한 동아건설 사건도 홍 변호사의 손을 거쳐갔다. 파산선고를 받은 회사가 M&A를 통해 정상기업으로 거듭난 사례는 전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의 주문 한가지. “회생절차 과정에 있는 기업을 되살리는 법규정은 거의 완비돼 있지만, 파산회사를 다시 회생시키는 규정은 없다.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관련 법규를 보완할 필요는 있다.”
파산직전의 기업을 정상화시키고, 어떻게 든 새로운 인수자를 찾아 주는 홍 변호사의 집념이 고용을 유지시키고, 이를 통해 지역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쳐 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의뢰인 이익이 최우선”= 홍 변호사는 요즘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거래 파트너가 부도위기에 처한 회사들이 채권회수 가능성을 자문해 오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 회생신청 건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홍 변호사는 예상했다.
특히 건설·해운과 관련된 기업들의 문의가 늘고 있는데, “해운회사가 부도위기에 빠져 법률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국제적 준거법인 영국 해상법과 우리나라 도산법이 충돌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사건해결이 쉽지 않다”며 새로운 솔루션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홍 변호사는 판사 시절 사건당사자가 보낸 편지 한 장을 여지껏 간직하고 있다. 개인회생제도를 통해 빚을 탕감받고 새 삶을 시작한 A씨가 보낸 것이다. 편지에는 “마치 다른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새 빛을 본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법과 원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건 당사자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려고 노력한 것이 감동을 준 것 같다”고 했다.
이 같은 원칙은 변호사로 전업한 뒤에도 변함이 없다. 법원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지 3개월째인 홍 변호사는 “신분은 바뀌었지만, 돈보다는 의뢰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며 손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그는 아직 판사 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자문을 구하는 의뢰인의 기분이 나빠지더라도 알려줄 건 알려줘야 겠다는 생각에 불편한 내용까지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나, 심지어 소송이 필요 없는 사건의 경우 그냥 돌려보내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동료 변호사들이 “순진하다”며 농담을 건네지만, 변호사가 된 지금에도 그는 “돈 보다는 의뢰인의 진심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을 가진 홍 변호사.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는 기업 CEO들이라면, 늦지 않게 한번쯤 그의 사무실을 노크해 볼 일이다.
전문변호사 20여명… 맞춤형 자문 제공
● 지평지성 도산팀은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도산팀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출신의 홍성준 변호사를 팀장으로 한 20여명의 전문 변호사로 구성돼 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관재인으로서 법원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의뢰인에게 맞춤형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법원의 기업회생 및 파산 실무서 발간에도 참여한 바 있다.
지난 2~3년간 하이트맥수의 진로 인수, 금호 컨소시엄의 대우건설 인수, 롯데제과의 베트남 BIBICA 인수 등 20여건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처리해왔다.
최근 'IFLR(Internation Financial Law Review) 1000' 2009년 판에서 구조조정 및 파산분야 국내 3위 로펌으로 선정돼 도산분야의 강자로 인정받았다.
지평지성 관계자는 "종합적인 법률 자문을 제공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 변호사들로 구성된 도산팀을 상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법무법인 지성과 지평의 통합으로 탄생한 지평지성은 적극적인 인재 영입을 통해 기업도산, 송무, M&A, 금융, 건설, 해운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로펌으로 성장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