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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술, 이젠 '시장'을 봐야
입력2008-01-30 17:30:46
수정
2008.01.30 17:30:46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정부조직개편안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뿐 아니라 정부 부처 간에도 극심한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그 논란의 핵심 중 한 자리를 과학기술 행정체제가 차지하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과학’과 ‘기술’은 한 몸이라며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과학과 기술의 분리는 대한민국의 성장잠재력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온다. 이러한 형식논리를 앞세운 이해다툼에는 지금까지 과학기술 행정체제의 공과에 대한 차분한 반성이나 이를 통해 국가경제적 관점에서 최적의 대안을 도출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그간 국가 연구개발(R&D) 투자가 10조원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왔다. 또 과학경쟁력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평가를 기준으로 세계 7위, 특허출원도 세계 5위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 같은 수치로만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 R&D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는 것처럼 착시현상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이 같은 R&D 투자의 양적 팽창이 과연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왔는지 의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R&D 투자의 경제성장기여도는 10.9%로 미국의 40.2%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국가연구개발과제의 사업화 성공률도 20% 수준, 대학과 연구소의 기술이전율은 2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기초과학와 기술개발을 동일한 틀에서 취급하는 우리의 과학기술 행정체제와 풍토가 과연 효율적이었는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초과학은 진리탐구의 영역이다. 대학과 연구소는 물리ㆍ화학ㆍ수학 등 기초원리의 연구와 함께 우주ㆍ지질ㆍ해양ㆍ생명 등 자연현상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 이는 시장의 관점이 아니라 연구자의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진리탐구 그 자체가 목적이 돼 이론적인 체계를 튼튼히 함으로써 국방ㆍ산업ㆍ농업ㆍ환경ㆍ금융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위한 공통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반면 기술개발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기술개발은 시장에서 시작된다. 기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에 무엇인가 가치를 주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R&D의 패러다임이 연구자 중심의 자유방임형 제1세대에서 프로젝트의 효율적 관리를 중시하는 2세대ㆍ3세대를 거쳐 시장의 가치를 통합해 기술개발을 지향하는 제4세대 R&D, 즉 연구 및 비즈니스 개발(R&BDㆍResearch&Business Development)의 개념으로 진화했다.
개방화와 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시장이 성숙ㆍ포화상태로 진입해 과거의 모방전략으로는 이제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하다. 파괴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전략을 통해 시장을 지배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제4세대 R&D의 출발점이 바로 이곳이다. 시장의 수요를 먼저 파악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혁신적 제품개발을 뒷받침할 원천ㆍ핵심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기술개발 과정도 따라서 단순한 응용연구가 아닌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가며 기초과학적 원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예를 들어 포화상태에 이른 메모리반도체시장의 석권을 위해 물질의 상변화(相變化)에 관한 물리학 연구를 토대로 D램의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보완한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P램을 개발했다.
한국의 과학기술 행정체제는 아직도 1세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술개발을 기초과학과 똑같은 선상에 놓고 ‘진리탐구’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적 호기심에 의존해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그 성과가 저절로 시장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극히 위험하다. 공연한 기대는 이공계 우대정책과 맞물리며 대학이나 연구소를 생계형 R&D로 전락시킬 수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과학기술 행정체제의 선진화를 앞당긴다는 큰 틀에서 바라보면 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기술혁신의 패러다임은 시장에 그 뿌리를 둬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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