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근로시간 면제 범위를 늘리는 방향으로 타임오프제를 완화함에 따라 일단 노조 활동에는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노조원 50명 미만의 2,600여개 사업장이 전임근무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다 전국 각지에 사업장이 흩어져 있는 1,000명 이상 사업장에도 가중치를 부여해 전임자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늘어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14일 나온 근면위 조정안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노조원 규모가 100명 미만인 사업장은 일괄적으로 타임오프 한도를 2,000시간으로 늘려주는 한편 사업장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1,000명 이상의 대규모 기업은 기존 타임오프 한도에 가중치를 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1,000시간으로 묶여 있어 노조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50인 미만의 사업장이 2,000시간으로 늘어나 노조 전임자를 1명 둘 수 있게 된다. 노동계에 따르면 노조원 50인 미만 사업장 수는 2,600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2,600개 사업장에서 노조 전임자가 생겨나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으면서 단체교섭 등 노조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단 이번 타임오프제 조정으로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지역 사업장 개수에 따라 타임오프 한도에 가중치를 주는 안에 따라 현재 19명인 노조 전임자 수가 21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체 조합원의 5%가 근무하는 지역 사업장이 2~5개 있는 경우 10%의 가중치를 주는 개정안을 적용한 예상치다. 2명의 노조 전임자가 현대차의 지난해 평균 연봉 9,400만원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1년에 2억원 가까운 부담이 늘어난다.
지역 사업장이 6개인 LG 전자도 가중치 20%를 적용 받으면 전임자를 2.2명을 더 늘려야 한다. 11명인 유급 노조 전임자가 13명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기아자동차 역시 개정안을 적용하면 전임자가 1.8명 늘어난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타임오프 한도를 늘리는 방안에 따르면 2,600여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2,600명의 풀타임 유급 전임자가 새로 탄생할 수 있다.
타임오프제 조정에 대해 재계도 노동계도 불만스런 표정들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근로시간면제제도의 입법취지를 감안해볼 때 면제한도를 점진적으로 합리적 수준으로 축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50명 미만 사업장과 전국단위 분포 사업장에 대해 면제한도를 확대하도록 결정한 것에 대해 경영계는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경총은 또 "근로시간면제한도는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활동과 필수적인 노조의 유지관리업무 수행을 위해 유급으로 인정할 수 있는 최대 상한선이므로 개별 기업이 실정에 맞춰 면제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도록 지도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이날 "조합 재정능력이 충분한 조합원 1,000명 이상 대규모 노조에 대해서까지 사업장이 지역적으로 분포돼 있다는 이유로 면제한도를 현저히 높인 것은 국가경제에 큰 부담을 주는 부당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철행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노사팀장은 "입법취지상 근로시간면제한도는 점진적으로 합리적 수준에서 축소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현행보다 확대한 결정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 한국노총은 "타임오프 제도가 시행된 것 자체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노조 탄압"이라며 "부분적으로 완화한 방안조차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재계 반응은 크게 우려스럽다"고 반박했다. 한국노총은 다만 "그동안 노조 전임활동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했던 50인 미만의 사업장에 다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타임오프제를 부분 개정이 아니라 아예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일부 전임자 숫자를 조정한다고 해서 타임오프가 가진 노조활동을 제한하는 근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해외에서는 노조활동시간의 하한선을 정해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상한선을 둬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만큼 아예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조정안은 타임오프제로 크게 위축된 노조 활동을 부분적으로나마 완화시킨 것"이라며 "노사 파트너십 강화의 차원에서라도 기업이 개정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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