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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첨성대(瞻星臺)가 천문 관측대가 아닌 선덕여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란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정연식 서울여대 사학과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선덕여왕의 성조의 탄생, 첨성대'라는 논문을 22일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 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첨성대는 천문을 관측하기에 불편하다는 반론이 나오면서 4계절과 24절기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규표(圭表)라는 설, 수학적 원리와 천문현상을 상징한 것이란 설,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의 모양을 본떠 만든 제단이란 설, 우물을 형상화했다는 설 등 다양하게 제기됐었다. 정 교수는 논문에서 "첨성대가 천문대나 규표, 제단이 아니라 선덕여왕의 즉위를 기념하고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물"이라며 "우물설은 일리가 있는 주장인데 우물은 일반적으로 풍요, 생명, 다산, 신성을 의미하는데 첨성대에서 우물은 더 큰 의미를 지니며 이는 성스러운 시조의 탄생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라사에서 유일하게 선덕여왕의 즉위와 함께 성조황고(聖祖皇姑), 즉 성스러운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여자 황제라는 뜻의 존호가 올려졌다"며 "신라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가 왕위에 올랐다는 것에 대한 귀족세력의 반감과 민심의 이반을 막고 왕권을 안정시키려고 왕을 종교적으로 신성화하는 작업을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 교수는 신성화 작업의 첫 번째는 여왕에게 '성조황고'란 존호를 올리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즉위 이듬해인 633년에 첨성대를 건립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이유로 첨성대가 왕궁이 있는 월성과 선덕여왕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지인 계림 근처의 탁 트인 평지에 9m 높이로 우뚝 세워놓은 것은 여왕이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와 석가모니의 혈통을 이어받은 성스러운 존재임을 모든 백성과 신하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첨성대의 몸통 돌이 27단인 것은 선덕여왕이 제27대 왕이라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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