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장 클로드 트리셰(66)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ECB 통화정책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뜻밖의 발언을 던졌다. 내용인즉 유럽의 인플레이션이 경계의 수위를 넘어 이르면 7월중에 금리를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미국발 경기침체의 파고로 유럽 경제가 둔화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ECB가 적어도 연말까지는 현재의 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던 시장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었다. 다음번(7월) 회의에서 금리를 올리겠다는 그의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발언은 이틀전 강한 달러 정책을 시사한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발언에 맞춰 움직이던 시장의 기류를 완전히 역전시켰다. 버냉키 발언 이후 오르던 달러는 약세로 전환되고, 국제유가는 하락세도 잠시, 강한 상승세를 타며 지난주말에 무려 배럴당 138달러까지 치솟았다. 트리셰 총재의 발언은 세계 각국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고,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광부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 한때 사회주의에 심취했던 그가 유로화 사용 15개국 중앙은행(ECB)의 수장이 된지 벌써 5년째다. ECB 초대 총재인 빔 두이젠베르크 총재에 이어 2003년 11월 제2대 총재에 취임한 그는 좌파적 시각에 입각해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채택했다. 물가가 안정돼야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성장의 기반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미국 FRB가 서브프라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여름 이후 단기금리를 5%대에서 2%까지 내리는 동안에 트리셰의 ECB는 금리를 인하하기보다는 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을 택했다. 금리정책을 최대한 지양하고 간접적인 방식을 활용하겠다는 게 그의 방침이었다. 그러던 그는 마침내 금리 인상의 칼을 빼들들겠다고 나섰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수위가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유로존 15개국의 5월 물가상승률은 3.6%로 전월대비 0.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ECB의 물가 억제 목표인 2%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유로화 도입 이래 최고치다. 15개 독립국이 하나의 중앙은행을 만든지는 지난 1일로 10주년을 맞았다. ECB 10주년을 맞아 트리셰 총재는 “자기만족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라며 축제 분위기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글로벌 신용위기의 거대한 풍랑이 세계 경제를 집어삼키려는 순간에 뱃머리에 서있다”고 자신의 심정을 말했고, 요즘은 “ECB가 맞닥뜨린 가장 큰 시련은 물가안정”이라고 지목하며 위기 대처를 강조했다 유럽의 다수 경제 전문가들이 트리셰에게 좋은 점수를 주고 있다. 스웨덴의 경제학자 스테판 게를라흐는 “훌륭한 중앙은행은 뒤에서 조용하면서도 성실하게 일한다”며 트리셰의 ECB에 지지를 보냈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리셰 총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신용위기에 신속히 대처했을 뿐만 아니라 유로화의 가치를 높였기 때문이다. 트리셰 총재는 스스로 ‘미스터 유로’라고 부르며, 강한 유로를 선호해왔다. 하지만 재임 기간 동안에 유로는 줄곧 상승하자, 그는 최근 유로가 너머 상승했다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ECB가 금리를 인상하면 유로는 추가로 상승하게 되고, 트리셰는 버냉키 FRB 의장과 함께 강(强)유로-약(弱)달러의 흐름을 저지해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경제성장 및 일자리창출을 무시한 채 물가 잡기에만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FRB의 대응에 익숙한 미국 이코노미스트들은 “그가 반성장적 성향(anti-growth bias)에 사로잡혀 있다”고 표현한다. ECB가 물가 억제에 중점을 둔 결과로 1999년 이후 미국의 연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2.6%인데 비해, 유로권은 고작 2.1%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안정돼 있지만,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독일에선 그에 대한 불만이 높다.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독일인들의 3분의1 가량이 공동통화인 유로를 포기하고 단일국가 통화인 마르크화로 복귀하길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리셰는 지도자 양성소로 유명한 프랑스 국립행정대학원에서 100명중 5등으로 졸업했으며, 시집을 출판할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어 ‘프랑스에서 가장 우아한 공직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학졸업후 후 탄광에서 일하기도 했고, 좌파 정당에 가입해 활동했다. 졸업후 1971년부터 경제관료로 살면서 사회당ㆍ보수당 중 어느 당이 정권을 잡든 정치적 잡음을 만들지 않았다는 평을 받는다. 프랑스 재무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맡은후 ECB 총재에 취임하고서도 그 평은 유효하다. ECB 총재 취임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이 ECB에 자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도록 종종 압력을 넣었지만, 트리셰의 반대로 그런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ECB의 독립성은 1992년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보장돼있지만, 트리셰 총재로 인해 그 기반이 단단해 지고 있는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