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로 상장기업들의 결산 주주총회가 모두 끝이 났다. 그 과정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슈퍼 주총데이'라는 냉소적인 용어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많은 상장기업들이 한날한시에 주총을 개최해 소액주주들의 권리 행사를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기업 대주주들의 전횡과 그에 따른 기업 부실은 환란의 주원인으로 지적됐다. 이후 사외이사제 도입을 시작으로 감사의 독립성 제고, 소수주주 권한 강화, 회계제도 선진화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노력이 꾸준히 진행됐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지배구조를 규정하는 법과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기업은 없다. 중요한 것은 법과 규정을 얼마나 실질적이고 엄격하게 적용하는가 여부다. 지난해 9월 모그룹의 사옥 부지매입 결정 이후 해당 그룹 전체 시가총액의 약 19조원이 증발한 일이 있었다. 시장이 해당 그룹의 지배구조가 취약한 것으로 판단하고 주식 매도라는 직접적인 행동을 표출한 결과다. 시장의 자율적인 견제기능이 활발해질 때 법과 규정을 보다 실질적이고 엄격히 지켜야 할 유인이 커진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시장의 견제기능이 작용돼야 할 이유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1999년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제정해 기업들에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모범규준은 법과 규정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배구조 기준과 그것을 이행할 실제적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각 기업이 처한 상황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모범규준의 준수는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할 것이다. 또 준수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에 대한 변명을 들어줘야 할 것이다. 만약 해명이 타당할 경우 시장의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의 준수 여부와 더불어 이를 지키지 못할 때 그 이유를 설명하는 '준수·예외설명(comply or explain)' 제도 도입을 제안하는 배경이다. 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시장을 통한 견제 기능'이 활성화될 수도 있다고 본다. 모처럼 국내 자본시장에 화색이 돌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취약'이라는 후진적 악재에 더 이상 한국 자본시장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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