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남자아이(엘니뇨·El Nino)보다 더 무서운 여자아이(라니냐·La Nina)가 온다. 올겨울 전 세계에 이상고온 현상을 몰고 온 엘니뇨가 내년 상반기쯤이면 끝날 것으로 보이지만 곧바로 강력한 한파를 동반한 라니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곡물 시장이 또다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따뜻한 기후를 동반한 엘니뇨가 현재 정점을 찍고 내년 상반기께 소멸할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 겨울에는 이번 엘니뇨보다 더 강력한 라니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농작물 시장이 다시 한번 혼란에 휩싸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페인어로 여자아이를 뜻하는 라니냐는 엘니뇨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한다. 엘니뇨는 해수면 온도를 높여 전반적으로 대기 온도를 상승시키지만 라니냐는 반대로 동태평양 바다의 온도를 낮춰 기온 하강과 추위를 몰고 온다. 주로 엘니뇨가 시작되기 전이나 끝난 후 발생하며 엘니뇨로 상승한 지구 온도를 다시 낮추는 역할을 한다. 라니냐가 반드시 엘니뇨와 동반해 발생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엘니뇨가 15번 나타날 때 라니냐도 11번 발생해 내년에도 라니냐가 이어질 가능성이 꽤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미국과 캐나다는 한파가 몰아닥쳐 추운 겨울을 맞게 되며 호주·인도네시아 등지에는 태풍과 폭우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리게 된다. 또 이듬해 6~8월께 아르헨티나 등 남아메리카 지역에 건조한 날씨가 이어져 심각한 가뭄이 초래될 수 있다.
이렇게 극심한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라니냐는 일반적으로 엘니뇨보다 곡물 시장에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콩·옥수수 등 곡물 산지가 몰려 있는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에서 라니냐 현상이 특히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지난 2010년 라니냐의 영향으로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며 농산물 생산량이 급감했다. 공급이 달리면서 당시 곡물 가격은 전례 없이 급등했다. 설탕 가격은 69%나 치솟았고 대두 값은 39%나 뛰었다. 밀 가격도 21% 올랐다.
CME그룹의 에릭 노랜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16년 후반부터 2017년 초반까지 강력한 라니냐가 발생해 농산물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라니냐로 내년 대두·옥수수·밀 가격이 50% 이상 급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CME그룹은 라니냐가 곡물뿐 아니라 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도 끌어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라니냐가 발생한 지난 2010년 당시에도 미국·캐나다에 추운 겨울이 계속되자 난방 수요가 늘어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바 있다.
호주 메릭캐피털에서 3억5,000만달러(약 4,087억원) 규모의 원자재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에이드리언 레드릭 수석 투자자는 "농산물 등 원자재 투자자들은 현재 엘니뇨를 비롯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라니냐가 시장에 미칠 영향력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최용순기자 senys@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