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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급부상한 샛별과 추락하는 큰 별의 세대교체가 눈에 띄었던 한 해였다. 한류 열풍 속에서 유독 고전을 면치 못하던 한국미술이 홍콩을 중심으로 한 해외경매에서 도약하며 국내 양대 경매회사의 홍콩경매 매출비중이 국내를 앞서기는 올해가 처음이었다. 김환기를 비롯한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이 새롭게 주목받은 별이었다면 국내 문학계를 대표하는 여성작가에서 '표절'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게 된 신경숙은 떨어진 별이었다.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한 조성진을 비롯한 국내파 클래식 연주자들, 세계 최고의 직지심경을 앞서는 만월대 금속활자 등이 국민들에게 기쁨과 자부심을 안겨줬고, 타계한 천경자 화백과 은퇴한 발레리나 강수진은 화려한 무대 뒤로 그러나 영원한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화팀>
문학권력 논쟁… 3대 출판사 세대교체 이어져
지난 6월 소설가 이응준은 베스트셀러 작가 신경숙의 소설 '전설'이 일본의 거장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우국'을 일부 베껴 쓴 것이라고 블로그를 통해 폭로했다. 신경숙과 '전설'의 출판사 창비가 이를 강하게 부인하면서 '표절 논란'은 문단을 뒤흔들었고 사회 전반을 달궜다. 여론에 떠밀린 작가와 출판사 창비 측이 결과적으로는 '사실상 표절'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출판사와 권위 있는 평론가가 표절 시비에 놓인 작가를 두둔하고 작가 또한 모호한 사과로 말끝을 흐리면서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금 간 둑이 터지고 말았다.
상업주의와 결탁한 비평은 돈 될 만한 작가를 위해 상찬(上饌)같은 평론을 써주고, 출판사가 자신들이 운영하는 문학상이나 폐쇄적인 등단구조를 통해 작가와 카르텔을 형성하는 등 '문학권력'의 음울한 속사정이 까발려졌고 타격을 입었다. 결국 전면 쇄신을 요구받은 창비의 백낙청 편집인이 퇴진했고, 문학동네의 편집위원 11명 중 7명이 물러났으며, 문학과 지성사도 편집위원을 교체하고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등 3대 출판사들이 세대교체의 미명 아래 물갈이를 시도했다.
김환기 작품 47억 낙찰… 경매사 사상최대 매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대표작인 푸른색 전면 점화 '19-Ⅶ-71 #209'(253×202㎝)가 지난 10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3,100만 홍콩달러(약 47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박수근의 '빨래터'가 보유한 45억2,000만원의 기록을 8년 만에 깬 국내 작가의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 신기록이었다. 해외에서 들려온 낭보는 '연중 계속'이었다. 양대 미술경매회사가 2008년 시작한 홍콩경매는 올해 처음으로 국내 메이저경매 낙찰총액을 추월하며 '해외시장 개척 성공의 원년'을 열었다. 서울옥션의 올해 낙찰총액은 1,081억원, K옥션은 669억원으로 작년 대비 2배 가량 급증했으며 양사 모두 창사 이래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해외 아트페어에서 불붙은 '단색화' 열풍이 경매시장까지 파급력을 미친 결과다. 김환기와 이우환의 주도세에 정상화·박서보가 생존작가로 '낙찰가 10억원' 달성을 이뤘는데, 이 역시 홍콩에서 팔린 작품 덕분이었다. 한국미술에 대한 아시아의 주목은 단색화 이외의 작가로도 확장 중이며, 그 여파가 국내 시장에까지 활력을 더하며 선순환을 이루는 중이라 내년이 더 기대된다.
국내파 20대 연주자 3인 세계 콩쿠르 점령
2015년은 국내파 젊은 연주자들의 세계 콩쿠르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한해였다. 5월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0)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했고 역시 만 스무 살의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9월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동양인·한국인 최초로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60회를 맞은 부조니 콩쿠르는 2001년 이후 단 3명에게만 1위를 안겨줬을 정도로 콧대가 높다. 조성진(21)이 10월 열린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며 이 같은 현상은 정점을 찍었다. 조성진의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은 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 수상과 비교되며 때아닌 클래식 붐으로까지 이어졌다.
20대 초반의 세 연주자는 한국에서 기본기를 다진 '국내파'라는 점에서도 관심이 쏠렸다. 임지영과 문지영은 유학 경험 없이 한국인 스승을 사사한 순수 국내파이며 조성진 역시 예술고 2학년 때야 경험을 위해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임지영과 문지영, 조성진 모두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후원하는 금호 영재 출신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메세나 활동도 주목받았다.
올 천만영화 세 편 나왔지만 양극화 여전
올여름 한 달 사이 한국 영화계에는 천만 영화 두 편이 탄생했다. 친일파 암살에 나선 독립군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암살(1,270만 명)'과 안하무인 재벌 3세를 쫓는 베테랑 광역수사대의 활약상을 담아낸 '베테랑(1,341만 명)'이 두 주인공. 1월 일찌감치 천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1,426만 명)'까지 합치면 한 해 총 세 편의 한국 영화가 나온 셈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흥행작에만 관객이 쏠리는 양극화 현상은 심해졌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는 240편을 넘어 역대 최대치에 가깝지만, 이 중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은 단 22편뿐이다. 많은 영화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와중 어떻게든 관객들의 눈에 띄기 위한 마케팅 출혈 경쟁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어벤져스2를 포함해 올해 배출된 천만 영화 4편 모두 대형 투자배급사가 참여해 블록버스터급 마케팅을 진행한 작품이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우려를 증명한다. 어벤져스2가 개봉 당시 1,800개 상영관, 암살이 1,500개의 스크린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가 줄고 있다는 걱정도 크다.
경주 월성 속살 공개·만월대 금속활자 발굴
신라의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月城)이 935년 신라 멸망 이후 1,0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3월 그 속살을 공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발굴현장을 방문해 격려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고 경주의 신라 왕경 복원사업은 더 큰 힘을 얻고 있다. 이어 지난 11월에는 개성의 왕궁터인 만월대에서 고려시대 금속활자 1점이 발견됐다.
만월대가 화재로 소실된 것이 1361년이므로 그보다 앞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이 금속활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지심경보다도 먼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해 얻어낸 첫 성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또한 사찰이 불경 제작으로 만든 금속활자와 달리 왕실 주도로 제작된 것이라 그 수준도 탁월해 향후 추가조사를 기대하게 한다. 이외에도 백제 최대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의 복구, 경주 불국사 석가탑 복원,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나온 사람얼굴 모양 돌조각 등 발굴 조사에서의 성과는 '국정 교과서'로 여론이 갈라진 우리 역사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자부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강수진 30년 무용인생 막내려
발레리나 강수진(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11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0년 무용 인생을 마감하는 은퇴 무대에 올랐다. 내년 7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은퇴를 앞두고 한국에서 먼저 은퇴 공연을 선보인 그는 마지막 작품으로 '오네긴'을 선택해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1986년 19세에 한국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해 세계적인 무용수로 활약해 온 그녀는 2007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50년 역사상 단 4명에게만 주어진 '캄머 탠처린(궁중 무용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메르스 불구 장수·창작뮤지컬 선전
'메르스'로 일부 작품의 개막이 연기·취소됐지만, 국내 뮤지컬 시장은 뒷심을 발휘하며 선전했다. 창작뮤지컬 '아리랑'·'신과 함께'가 성황리에 초연했고, 일본 원작의 국내 초연작 '데스노트', '오케피'도 개막했다. 창작뮤지컬 '명성황후'가 20주년을 맞아 20년 전 초연 무대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펼친 데 이어 '맨오브라만차'(15주년), '빨래', '사랑은 비를 타고', '베르테르'(이상 10주년) 등이 잇따라 기념 공연 무대에 올랐다.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타계
독특한 화풍으로 한국 화단을 주름잡은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6일 긴 투병 끝에 뉴욕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이 10월 하순 뒤늦게 알려졌다. 애도와 함께 고인의 대표작을 소장하고 별도 전시장을 마련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추모객이 줄을 이으며 관람객이 급증했다. 이와 함께 해묵은 천경자의 '미인도'에 대한 위작 주장이 다시 제기됐고 더불어 이우환 위작 유통에 대한 경찰 조사 등 '위작 파문'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예능프로 '마리텔' '복면가왕' 인기
올해의 예능으로 꼽힐만한 두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복면가왕'의 공통점은 스타의 외적 매력이나 후광은 모두 제거한 채 그들의 진짜 실력에만 집중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콘텐츠가 부실한 스타가 그 인지도와 상관없이 망신을 당했고, 예쁘지 않은 무명 가수가 오로지 가창력만으로 재조명받았다. 시청자들이 오직 실력의 대결에만 초점을 둔 예능에 열광하는 건 우리가 물고 태어난 수저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수저 계급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경영난에 대학로 등 소극장 줄폐업
연극계엔 유난히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쳤다. 한국 연극 발전을 이끈 소극장이 잇따라 경제난으로 문을 닫았다.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을 이끈 40년 역사의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이 적자 누적으로 10월 폐관했고, 이에 앞선 1월과 4월엔 대학로 상상아트홀과 대학로극장이 문을 닫았다.관객 상당수가 로맨틱 코미디나 인기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으로 몰리고, 건물 임대료마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으면서 이들 소극장은 설 곳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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