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유지 땐 자금이탈, 인상 땐 경기침체 '딜레마'
멕시코·칠레 통화가치 하락 방어 위해 기준금리 올려
대만·인니 등은 "수출 촉진 급선무" 금리인하·동결
美 긴축속도·中 경기 따라 신흥국경제 지각변동 예상
신흥국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금리 인상과 중국 경기둔화라는 주요2개국(G2) 리스크를 동시에 직면하며 통화정책의 디커플링(비동조화)이 가속화하고 있다.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고 고물가에 시달리는 중남미·아프리카 신흥국은 경기 부양을 희생하고 연준발 외국인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선방 중인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발 경기둔화에 대응해 수출 촉진이 더 급선무라고 보고 금리를 동결 및 인하하고 있다. 대외부채가 많고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한데도 '마이 웨이'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연준의 긴축 속도 등 G2 리스크의 전개 방향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신흥국들이 저금리를 유지하자니 외국인 자금유출을 촉발할 수 있고 연준 금리 인상에 발을 맞추자니 경기침체를 감내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전했다.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일부 신흥국의 선택은 금리 인상이다. 자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달러 표시 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 늘어나면 도미노 기업 부도에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MSCI 신흥시장 환율지수는 올 들어서만 14%나 추락한 상태다.
이날 멕시코 중앙은행의 경우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올렸다. 지난 2008년 이후 첫 인상이다. 낮은 물가와 경기둔화에도 페소화 가치의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서다. 칠레도 이날 통화가치 하락과 물가 급등을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3.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전날 연준의 금리 인상 발표 직후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등 중동 산유국도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가뜩이나 저유가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마당에 달러화 강세에 추가적인 유가 하락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또 오만·카타르 등 미 달러화 페그제(달러 연동 고정환율제)를 운용 중인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도 금리 인상이 확실시된다. 동유럽의 신흥국 조지아도 기준금리를 8.0%로 0.5%포인트 올렸다. 앞서 이달 초에는 남아공이 금리를 올렸고 페루·브라질·콜롬비아·터키 등도 추가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
반면 대다수 아시아 신흥국은 환율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통화완화 정책을 지속 중이다. 무역 의존도가 높아 중국발 위기를 돌파하려면 수출 증가밖에 없기 때문이다. 17일 대만이 올 들어 두 번째로 기준금리를 0.125%포인트 인하한 게 단적인 사례다. 로이터는 "대만은 자본 유출 우려보다는 중국의 경기둔화에 따른 수출 부진과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이 더 문제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인도네시아도 2013년 '긴축발작'으로 대규모 자금유출 사태를 겪은데다 올해도 루피화 가치가 추락하고 있는데도 금리를 동결했다. 경기지표가 부진하면 내년 1월 추가 완화에 나서겠다는 뜻도 시사했다. 같은 날 필리핀도 15개월째 금리를 동결했다. 와이 호 렁 바클레이스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상반기에 한국·인도·중국·인도네시아 등이 통화완화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로서는 최종 승자와 패자를 가늠하기는 이르다. 가뜩이나 중국발 경기둔화의 충격이 큰 마당에 중남미 국가들처럼 긴축 정책을 지속했다가는 경제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고사할 수 있다. 반면 시간문제인 연준의 출구전략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G2 리스크가 신흥국 내부에도 경제질서의 지각변동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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