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건축과 도시] 도시를 젊게 만드는 오래된 건축, 대학로 샘터사옥

붉은 벽돌 휘감은 담쟁이 넝쿨… '대학로 정체성' 담긴 공간

길 맞은편 학림다방과 함께 대학로 지켜온 터줏대감

푸른빛에서 석양빛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다른 모습

행인들 통로이자 비 피하는 쉼터… 공간 배려 돋보여

[건축과 도시] 혜화동 샘터4
①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뒤편에 위치한 대학로 '샘터 사옥'. 고(故) 김수근 씨가 설계한 샘터는 붉은 벽돌과 건축물을 에워싸고 있는 담쟁이넝쿨로 인해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른 매력을 뽐낸다.
[건축과 도시] 혜화동 샘터2
②샘터 1층에 필로티 구조로 비어 있는 공간. 사람들은 이곳에서 비를 피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린다.
[건축과 도시] 혜화동 샘터16
③샘터 꼭대기 층인 5층은 김수근 씨의 제자인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2000년대 말에 증축했다. 원형과 차이를 두기 위해 철과 유리를 사용했다.
[건축과 도시] 혜화동 샘터11
④대학로 이면도로에서 바라본 샘터 사옥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와 고개를 돌리면 담쟁이넝쿨로 둘러싸인 붉은 벽돌 건축물이 나온다. 건축가 고(故) 김수근씨가 1977년에 설계해 1979년에 완공된 대학로 '샘터 사옥'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조로 불리는 대학로에는 하루가 다르게 오래된 건물이 물러나고 새로운 건물이 올라서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 속에서도 샘터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며 오래도록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샘터는 1956년부터 반세기가 넘도록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길 맞은편의 '학림다방'과 함께 대학로를 지키는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다.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샘터에 대해 "대학로의 역사를 증언하는 건축물"이라고 평했다.

김수근 건축의 정수, '붉은 벽돌 건물'의 효시

샘터 사옥은 건축가 김수근씨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1970년대 황금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당시 김씨가 사용한 주재료는 '벽돌'이었다. 그는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말할 정도로 벽돌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승 대표는 "김수근 건축의 정수는 벽돌 건물"이라며 "벽돌이라는 소재는 따뜻한 느낌을 주면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휴먼 스케일'이라는 점에서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붉은 벽돌 건물의 효시가 바로 샘터다. 샘터와 함께 마로니에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김씨의 또 다른 작품들인 아르코 미술관(1979년 준공), 아르코 예술회관(1981년 준공) 등의 붉은 벽돌 건물은 대학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됐다. 승 대표에 따르면 당시 서울시에서도 대학로에 들어서는 건축물에 대해서는 붉은 벽돌을 주재료로 사용하라고 권장할 정도였다고 한다.

샘터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는 담쟁이넝쿨이다. 준공과 동시에 심어진 담쟁이넝쿨은 샘터에 실용과 낭만이라는 서로 다른 매력 두 가지를 선물했다. 담쟁이넝쿨 덕분에 무더운 여름날에는 단열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됐으며 오래된 벽돌 건축물이 주는 낭만적인 분위기도 더욱 돋보이게 됐다.

또 시간의 변화에 따라 푸른 녹색빛에서 붉은빛으로 다양한 색깔로 물들었다가 지금과 같은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 담쟁이넝쿨 덕분에 마치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건축물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승 대표는 "샘터는 계절에 따른 변화뿐만 아니라 아침과 낮, 그리고 저녁 등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며 "개인적으로는 담쟁이넝쿨과 플라타너스 나무로 둘러싸인 샘터가 오후 늦게 석양빛을 받은 모습이 가장 황홀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공공영역에 대한 건축주의 배려

샘터는 출판사 샘터의 사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현재 출판사 샘터의 고문으로 있는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터를 사들인 다음 김씨에게 설계를 맡겼다. 이처럼 사적 용도로 지어졌지만 샘터는 공공영역에 대한 건축주의 배려가 돋보이는 건축물로 꼽힌다. 한 예로 1층에 필로티 형식으로 비어 있는 공간이 있는데 이는 대로변과 이면 도로를 이어주면서 공공성을 확보한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이 공간을 통로 삼아 대학로의 안과 밖을 드나든다. 또 지하철에서 내린 승객들은 이곳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도 하고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승 대표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공공영역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라며 "대학로에서도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땅을 상업적인 이윤 극대화에만 쓰지 않고 공공에 내줬다는 점은 높게 평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승효상씨가 대표로 있는 이로재는 지난 2002년 지금의 사무실로 이사 오기 전까지 1990년대 초반부터 약 10년간 샘터 4층을 사옥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로재가 샘터 사옥을 사용하던 10년간 단 한 번도 임대료가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승 대표는 "어느 날 주변 다른 건물들과 임대료를 비교해봤는데 말도 안 되는 임대료를 내면서 샘터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건축주에게 미안하고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지금 있는 곳에 땅을 사서 사옥을 지었다"고 말했다. 이는 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건축주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일화다. 샘터가 공연장·화랑 등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사용됐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도시의 매력을 높이는 오래된 건축물

샘터는 준공 이후 30년이 넘도록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건물이다. 2000년대 말 김씨의 제자인 승 대표가 맨 꼭대기 5층을 증축한 것을 제외하고는 변화가 없다. 당시에도 원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



승 대표는 "증축을 하면서도 벽돌 건물의 본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벽돌이 아닌 유리와 철을 사용했다"며 "김수근 선생님이 설계한 부분과 제가 설계한 부분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건축물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옛 건물을 철거하고 재개발해 새 빌딩이 들어서면 임대료가 크게 상승해 오래된 식당이나 작은 가게들이 사라진다"며 "결국 도시에 있는 다양한 활력 요소들이 사라지고 특색 없고 밋밋한 대기업 사무실만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 전 세계적으로도 옛 건물을 고쳐 고용을 창출하고 자산 가치를 증대시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영국 런던이나 독일의 베를린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의 건물에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거리가 활성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구자훈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제인 제이콥스는 거리의 매력은 건물의 용도, 규모·햇수·상태 등이 다양할수록 커진다고 했다"며 "특히 오래된 건물은 그 지역의 역사와 지역 정신(genius loci)을 만들어내는 의미 있는 건물이며 샘터는 그런 면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귀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소극장·서점 대신 술집으로 채워지던 대학로, 대학 분교 속속 입성하며 옛모습 되찾아간다



과거 서울대 캠퍼스가 위치해 '대학로'라는 이름이 붙여진 동숭동·혜화동·연건동 일대는 원래 문화와 예술의 거리였다. 이 같은 대학로의 이미지는 1970년대 서울대가 관악으로 옮기고 난 후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소극장과 서점·화랑들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건축가들도 많이 모여 살았다. 하지만 그런 대학로의 이미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됐다. 지금 홍대, 이태원 경리단길, 신사동 가로수길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카페가 하나둘씩 들어서고 그 후 술집과 옷가게 등이 빠른 속도로 대학로를 차지했다. 급속한 상업화로 임대료가 올라가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원주민들은 하나둘씩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그 많았던 책방이나 화랑도 좀처럼 찾기 쉽지 않다.

단순히 사람들만 떠난 것이 아니다. 건물들도 상업주의에 물들어갔다. 기존 건물들도 좀 더 많은 용적률을 가지기 위해 천박한 몰골로 변해갔다. 높지 않은 아늑한 건물들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맞아주던 대학로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대학로에 최근 조금씩 변화의 기미가 싹트고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젠트리피케이션' 대책 때문은 아니다. 최근 대학로에서 나타나는 눈에 띄는 특징 중의 하나는 대학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성균관대와 서울대 의과대학 외에도 예술 관련 학과를 가진 학교들이 잇따라 대학로에 분교를 내고 있다.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서울시의 인위적인 대책보다 중요한 것은 최근 들어 대학로에 20여개 정도의 대학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라며 "덕분에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대학로로 몰려들면서 거리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에 따라 학생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가게들도 늘어나는 등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