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유태형 팝니다’라는 이름을 내 건 홈페이지(▶클릭)와 페이스북 페이지(▶클릭)를 개설하고 자신의 경매 현황을 실시간 중계했던 취업준비생 유태형(28·사진) 씨를 인터뷰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전화를 건 때는 17일 ‘청년 실업률 8.1% 넉 달 만에 최고치’라는 우울한 제목의 기사를 읽은 직후였다. ‘N포세대’니 ‘헬조선’이니 ‘인구론(인문계 90%가 백수)’, ‘문송(문과라서 죄송)’까지 취업 관련 우울한 신조어가 이제는 더 이상 ‘뉴스(news·새로운것)’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드는 요즘, 유 씨의 시도는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이었던 탓이다.
첫 통화를 시작한 지 2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자기 PR을 쏟아내더니 급기야 “서울경제신문에도 사람이 필요하지 않느냐. 나 같은 사람을 데려다 쓰면 좋을 것이다. 콘텐츠 만드는 능력도 탁월하다”며 경매 응찰까지 권했다. 그의 적극적인 태도에 노호코리아라는 한 미국계 음료 회사는 그에게 연봉 1억원을 베팅했고 교육기업인 인큐는 한 달에 원하는 날 하루만 출근하는 조건으로 연봉 1,000만원을 불렀다. 총 8개 회사가 응찰했고 그는 약 3주간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정말 취업을 하고 싶은 것인지, 스타가 되고 싶은 것인지, 우울한 취준생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뉴스를 만들어주고 싶었는지 진짜 의도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셋 다”라고 답했다. 유 씨는 “이번 경매 이벤트에서 내가 선례를 만들면 기업들이 좋은 인재들을 찾아오게 하는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많은 취준생들로부터 ‘세상에 한 방을 날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마다 결과가 어떻든 옳은 일을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웃었다.
그는 경매를 종료한 18일 오후 6시 판도라TV에서 생중계로 자신이 갈 회사를 발표했다. 그를 차지한 회사는 인큐였다.
-왜 이런 이벤트를 벌였나.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해보고 싶었다. 군 제대 후 두 차례 사업을 했다. 하지만 연거푸 실패했고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취직이 되면 일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재능도 웬만큼 갖췄다고 봤다. 하지만 알아주는 곳은 없었다. 대학교 졸업을 안 한 탓에 지원 조차 안 되는 곳이 많았고 하루 만에 불합격 통보를 받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친구의 포스팅을 봤다. ‘불합격, 자격미달, 탈락. 오늘 완전히 걷어차인 하루다’라고 적혀 있었다. 정말 출중한 능력을 갖춘 친구였는데 그날 하루에만 5개 회사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틀을 깨보기로 했다. 기존의 취업 방식은 기업이 직원을 뽑는 것이지만 주체를 뒤집어 보기로 했다. 나를 알아야 기업들이 나를 뽑아 가는데 알 수가 없으니 내가 알려주기로 한 거다.”
▲창업허브 디캠프(D.CAMP)에서 진행한 상장사 스타트업 상생 매칭 컨퍼런스에서 그는 ‘유태형 팝니다’ 이벤트 경매를 진행했다. BH소프트라는 IT기업이 4,200만원을 입찰하기도 했다.
-3주간 어떤 일들을 벌였고 결과물은 무엇인가.
“우선 나와 같은 처지의 취준생들로부터 응원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세상에 한 방을 날려줘 고맙다’는 말도 들었다. 그걸로 내가 생각한 목표는 달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홈페이지 개설만 하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명함을 찍어서 판교, 여의도, 종로 등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전단지를 돌렸고 스타트업 대표나 유명인사들을 찾아 다니며 이번 프로젝트의 취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경매를 시작한 지 일주일만에 창업기업인 야놀자에서 응찰했고 한 벤처캐피털 대표님 소개로 상장기업 모임에 가서 오프라인 경매도 진행했다. 그때 BH소프트라는 회사에서 나에게 연봉 4,200만원을 베팅했다. 경매 마감을 앞두고 더 파격적인 제안들이 쏟아졌다. 3주간 행복한 고민을 했다.”
-이벤트를 통해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이번 이벤트를 알릴 때 과거에 했던 일들에 대해선 적지 않았다. (그는 2012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국 15개 도시에서 솔로 매칭 파티인 ‘솔로대첩’을 기획해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진행한 그 과정만 보고 나의 능력을 판단해주기를 바랐다. 홈페이지 만드는 법도 직접 공부했고 유인물도 직접 제작했다. 이벤트를 벌이고 마케팅을 하는 나의 능력을 여지 없이 드러낸 작업이다. 그래픽·영상·음악 등 콘텐츠 제작툴을 얼마나 다룰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이번 프로젝트 자체가 나의 이력서인 셈이다.”
-응찰한 기업들은 어떤 곳들인가.
“숙박앱으로 이미 유명한 야놀자는 실행력이 돋보이는 회사다. 블로그(▶클릭)에 나를 뽑으려는 이유와 근무조건을 상세하게 소개해준 점도 인상깊었다. 1억원을 베팅한 노고코리아는 정말 예상 밖이었다. 2주 전 회장 면접을 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고 미팅 이후 연락이 없어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미팅 일주일 뒤 1억원의 연봉을 부른 거다. 마지막 응찰자인 인큐는 한 달에 한 번만 출근하는 조건으로 연봉 1,000만원을 불렀는데 1년 기준으로는 연봉이 2억5,000만원인 셈이다. 연봉은 둘째 치고 자율성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일을 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을 테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프로젝트 이후 유태형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변한 것은 없다. 다만 나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했고 이제 내 실력으로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거다. 틀을 깨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 인큐에 한 달에 한번만 출근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도 진행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