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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칼럼] 멀고먼 소프트웨어 강국의 꿈

박태하 솔박스 대표

국내 산업계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SW)는 특이한 분야다.

우선 짧은 역사에 비해 변화가 심했다. 1980년대 중반 개인용 컴퓨터(PC)가 대중화되기 시작했을 때는 선호도에서 의대를 앞서며 좋은 인재들이 몰렸다. 인터넷과 벤처 붐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반에는 대기업을 박차고 SW 벤처로 이동할 정도로 꿈과 희망이 넘쳤다. 그러나 사회 분위기가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하면서 대학이나 취업시장에서 인기가 크게 떨어졌다.

또 다른 특징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만큼 대접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첨단화하는 스마트폰, 자동차 등 제조업뿐 아니라 바이오ㆍ나노ㆍ빅데이터 등 새로운 산업에서도 SW는 그 분야의 핵심 경쟁력을 좌우한다. 하지만 SW는 핵심보다는 보조역할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SW는 더 중요해지고 기업들은 더 많은 인재를 필요로 하겠지만 정작 우리의 SW 수준은 턱없이 낮고 우수 인력들은 SW를 외면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필자는 그 원인을 선진국에 종속된 구조와 획일화된 평가 시스템에서 찾는다.

지난 10년여 동안 정부는 SW산업 육성을 위해 공공구매와 SW 연구투자 확대, SW 인력 육성, 중소기업 지원 등 여러 대책을 반복적으로 시행했다. 하지만 선진국 특히 미국산 기반의 SW와 플랫폼에 종속된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고 SW산업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계량 평가에만 몰입 개발의지 꺾어

또 SW산업의 부진은 개별 기업의 문제보다도 우리나라 경제발전 시스템의 한계에 따른 부작용인 측면이 강하다. 우리나라는 대규모 자원을 한 곳에 집중해 산업화를 이뤄냈다. 반도체ㆍCDMAㆍ초고속 인터넷 등 정보기술(IT) 분야도 유사한 시스템으로 성공했다. 문제는 SW가 이런 산업화 시스템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분야라는 점이다.



SW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산업화 시스템에 의한 제품평가를 꼽는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발전과정에서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정량적 평가를 크게 늘려왔다. 대학입시마저도 공정성을 이유로 객관식 위주의 평가 시스템을 도입했다.

SW도 객관식 위주의 평가를 한다. 시스템통합(SI) 분야에서도 제품 가치를 토목공사처럼 투입 인력의 숫자로 단순화시켰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과제도 논문이나 특허의 숫자 등으로 성공여부를 계량화하면서 대부분의 과제가 성공으로 끝나지만 실제 사업화 실적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SW는 무형의 생산물로 인터넷 생태계를 통해 발전한다. 단순한 객관식 평가로는 문제를 피할 수 있을 뿐 우수한 SW 발굴은 불가능하다. 특히 인터넷 생태계를 유지하는 인프라 SW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벽성과 확장성 등 실제 가치 측면에서는 10배, 1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마치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휴대폰을 만들지만 아이폰이라는 하나의 제품에 의해 얼마나 많은 변혁과 기업의 흥망을 가져왔는지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경쟁력 갖춘 기술인력 제대로 키워야

또 인프라 SW는 무형의 구조물이지만 고층 건물을 짓는 것에 비유를 많이 한다. 가령 10층짜리 건물을 설계해 지었지만, 향후 100층으로 증축하는 것을 가정해보자. 건물의 구조 자체를 제대로 설계하고 작은 균열도 용납하지 않도록 시장에서 치열하게 검증되지 않았다면 100층으로 확장한 후에 무너지지 않고 버티기 어렵다.

우리나라 SW 인력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측면에서 SW산업의 미래는 밝다. 제대로 된 방향 설정과 평가가 이뤄진다면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성과도 가능하다고 본다. 전세계 온라인 게임을 선도하는 게임 업체들이 대규모 자본이나 국가의 지원 없이도 성공한 사례가 우리의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준 것이다.

우리 경제는 그동안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발전해왔다. 산업화에서 창조, 융합으로 옮겨가는 지금의 변화도 분명 기회로 만들 수 있다. 다만 그동안 SW 분야에 적용했던 정량적 산업화 시스템을 바꾸고 각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풀뿌리 기업들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10년 후 우리의 SW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터넷 생태계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우뚝 서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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