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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호 전 국민은행장,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했을 것"

서울경제신문에 소회 밝혀

'위대한 KB' 만들고 싶었는데, 미안… 잠재력 곧 드러날 것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 /=연합뉴스


KB사태 회장·행장 싸움 아냐… 겸임체제 꼭 필요한지 의문

직원들 응집력 대단, 미래 밝아… 고객 중심 원칙 복원하면 성장


사람에 대한 평가는 보통 떠나간 자리가 얼마나 깔끔했느냐를 두고 이뤄지기 마련이다. 고위관료나 기업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평가는 더욱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KB사태'에 따른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던 이건호(사진) 전 국민은행장에 대해 평가는 엇갈린다. 사태가 정점에 올랐을 당시 그는 조직 안팎에서 온갖 비판을 한몸에 받아야 했다. "조직이 아닌 개인을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역설적이게도 동정론이 더 많다. 금융당국의 중징계 이후 깨끗이 자리에서 물러나며 이 전 행장은 나름대로 아름다운 퇴장을 했다는 평가를 얻게 됐다.

이 전 행장은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며 "후회는 없고 홀가분한 마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특히 "KB사태를 회장과 은행장 간의 싸움으로 절대 보지 말아달라"며 "부정행위를 바로잡으려 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짐 콜린스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따와 경영 모토로 삼은) '위대한 KB'를 만들지 못하고 물러난 점은 아쉽고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짙은 아쉬움을 토해냈다.

그는 회장과 행장 겸직 체제 등 차기 KB의 지배구조와 관련해서도 "어떤 지배구조가 좋고 나쁘다가 이슈는 아닐 것 같다"며 "한 사람이 하게 될 경우 견제장치가 없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전 행장이 행장직을 그만둔 뒤 언론과 장시간 사태의 전후에 대해 얘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 행장은 지난 5월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의 비리를 당국에 보고하면서 KB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이 사태는 결국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동반퇴진으로 이어졌고 국내 금융감독 시스템 전반에 걸쳐 커다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다만 이 전 행장이 금융당국 중징계 이후 반발 한번 없이 깨끗이 자리를 물러난 반면 임영록 전 KB 지주 회장은 당국과 끝까지 대립하면서 이사회에서 해임 조치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돌이켜보면 이번 KB 사태에서 이 전 행장은 한 차례도 말을 바꾼 적은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의 비리 문제를 은행장으로서 좌시할 수 없었을 뿐'이라는 주장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다. 결과적으로 이 전 행장의 고발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다만 은행장으로서의 조직 관리 감독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지고 자리는 내놓게 됐다. 그에게 내려진 당국의 징계 수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전 행장은 "아직까지도 회장이 이겼느냐, 행장이 이겼느냐 그 얘기들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애당초에 그런 문제로 시작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 CEO로 앉아있는데 밑에 직원들이 보고서를 조작해서 이사회에다 올린 혐의가 드러났다"며 "이걸 어떻게든 깔끔하게 처리를 안 하면 직무유기가 된다고 판단했을 뿐이다"고 강조했다. 그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사태가 정권 낙하산 회장과 행장의 싸움으로 비춰진 것에 대해서는 "제가 무슨 얘기를 해도 보시는 분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도 중징계를 내린 금융당국의 양비론적 징계에 대한 섭섭함도 있었겠지만 "당국도 당국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최근 KB사태의 또 다른 책임자들로 지탄받는 사외이사들에 대해서는 "은행 사외이사들은 저와 대척점에 섰던 분들이고 지주 사외이사들은 법적으로 은행과 관계가 없다"며 "제가 그분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행장은 다만 떠나간 조직에 대한 애정은 강하게 드러냈다. 은행장으로서 미처 이루지 못한 포부에 대한 아쉬움도 숨기지 않았다.

은행장이 꿈이었던 그는 정통 은행원은 아니었지만 은행업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신은 뚜렷했다. 취임 이후 '스토리 금융'이라는 새로운 영업방식을 추진하며 은행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금융계에서는 국민은행이 이미 리딩뱅크로서의 위상이 추락했다고 평가하지만 이 전 행장은 "국민은행은 정말 좋은 은행"이라며 "직원들의 응집력과 애행심은 대단하다"고 반격했다. 그는 "방향만 잘 잡고 콘트롤 하면 굉장히 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라며 "어떤 식으로 그 잠재력을 발산하게 해줄 것이냐 그런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 행장은 지금은 떠난 은행장 시절의 포부와 관련해서도 "위대한 KB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는 짐 콜린스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따온 표현이다.

그는 "현 시점에서 볼 때 국민은행은 직원들의 응집력과 영업력만 따지면 더 추가할 것이 없었고 고객 중심이라는 원칙과 절차만 지킨다면 위대한 KB가 가능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그는 고객 중심이라는 것은 어떤 조직이든 경영의 핵심"이라며 "그 부분만 복원한다면 국민은행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차기 KB의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회장·행장 겸직체제의 필요성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자신이 비록 지주 회장과의 갈등 끝에 물러났지만 지나친 일인자 시스템은 오히려 일인자 독주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회장과 행장의 겸직체제에서라면 KB 사태를 일으킨 보고서 조작을 그대로 두고 봐야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며 "역으로 봐서 한 사람이 하게 될 때는 아무런 견제장치가 없는 문제점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민은행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추진했던 스토리금융이) 직원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도 있었겠지만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이 많아서 행장 업무는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 전 행장의 믿음처럼 내분 사태에도 불구, 국민은행 직원들은 올 3분기 예상 밖의 실적을 내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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