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수익을 내야 투자를 하고 고용을 늘린다. 금융사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어야 정보기술(IT)과 서비스 개발을 하고 채용을 더 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가 급격하게 빠른 속도로, 그것도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면 수익은 줄어들고 자연스레 투자도 뒤로 미뤄지게 된다. 연쇄효과로 금융사가 제공하던 각종 서비스는 줄어들고 질도 낮아진다.
금융감독 당국의 지나친 규제가 금융산업의 서비스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카드업계가 대표적이다. 무이자할부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고 카드별 혜택은 계속 조정되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 조정과 레버리지 규제, 카파라치 도입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탓이다. 주요 수익원인 카드대출은 당국이 크게 늘릴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시중은행마저도 상품별 부가서비스를 줄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과거와 같이 높은 수준의 성장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일정 수준의 수익은 나야 하는데 카드업은 공익사업이 돼버렸다"며 "산업의 기본 틀을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한다. 업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요즘 상황만 보면 기업의 주장이 어느 때보다 설득력이 있다.
◇신규 IT 투자 대상 많아=스마트폰으로 계좌이체나 결제 같은 금융업무를 보는 '스마트금융'은 이제 금융사에 대세다. 결제수단이 핸드폰으로 몰리면서 KB나 신한ㆍ하나 같은 주요 금융지주사는 스마트금융 전담부서까지 두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IT 구현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적이다. 근거리무선통신(NFC)을 이용한 모바일결제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카드사가 동참해야 한다. NFC 결제란 쉽게 말하면 스마트폰 안에 신용카드 기능이 탑재되는 것이다. 카드정보가 들어가기 때문에 관련 기술 개발과 애플리케이션 등은 카드사가 책임져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사의 경우 대규모 전산투자가 필수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대세인 상황에서 IT에 대한 투자 없이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시중은행은 평균적으로 전산시스템 유지보수에만 매년 2,000억원 안팎을 쓰고 있다. 차세대전산시스템을 도입하면 최소 수천억원의 돈이 들어간다. 카드사도 은행보다는 적지만 그에 못지않은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카드사가 전산이나 IT 투자를 많이 하지 못하면 소비자에게도 피해가 돌아간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처럼 IT 관련 기술이 빨리 진화하는 나라에서 카드 서비스 발전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얘기다.
보안 문제도 걸려 있다. 국민 1인당 4.5장의 카드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해킹을 통한 정보유출 사건은 꾸준히 터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도 보안투자를 늘리고 보다 안전한 시스템 구축을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난이 오면 보안투자 등은 뒤로 밀리게 마련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일부 카드사는 2012년 순이익이 전년 대비 20~30%가량 줄었다.
부대 서비스 축소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무이자할부 축소와 신용카드의 부가서비스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카드사가 각종 혜택을 지나치게 제공해왔던 것은 맞지만 일부 서민 등은 잘 받아오던 혜택을 뺏기게 됐다. 카드사 입장에서도 감독 당국의 옥죄기에 수익마저 줄어들어 서비스 혜택을 줄이는 쪽으로 간다. 예전대로 혜택을 유지하면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신용카드 결제가 택시 같은 대중교통으로 확산되면서 국민이 얻는 혜택이 크지 않았느냐"며 "각종 규제로 카드산업이 정체에 머물고 수익을 내지 못하면 향후 IT 분야 등에 대한 투자가 줄어 결국 서비스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발 공동화…일자리 감소하나=당국의 급격한 건전성 강화 조치에 따른 유탄을 맞고 있는 곳도 있다. 카드모집인이다. 길거리 모집 제한으로 카드모집인 수가 급감하고 있다. 과소비와 지나친 대출을 억제한다는 의도는 좋지만 예상치 않은 곳에서 부작용이 생긴 셈이다. 2011년 말 5만명이 넘던 카드모집인 수는 1월 말 기준으로 3만명대로 주저앉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길거리에서 가입한다고 모두 부실이 생기고 마구잡이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당국은 모집 방식을 규제할 게 아니라 카드사의 심사가 제대로 되는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면 된다"고 했다.
규제를 피해 해외로 나가는 곳도 있다. 현대캐피탈은 성장의 축을 국내에서 해외로 옮겼다. 국내에서는 금리 규제와 경제민주화 요구 등으로 더 이상 회사가 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내부 판단이다. 현대카드도 국내에서는 점유율을 높이지 않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금융사나 기업이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규제 문제로 해외로 나가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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