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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겼어도 꼭 필요한 전차가 있습니다. 바로 장애물 개척 전차입니다. 방위사업청이 최근 전력화를 위한 기본전략안을 마련해 빠르면 2018년경 선보일 것 같습니다. 장애물개척전차에는 두 가지 선입견이 있습니다. ‘못생겼다’는 점과 ‘공병 장비’라는 것이죠. 둘 다 문제가 있는 선입견입니다. 장애물개척전차는 공병부대에서 운용하겠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기계화보병사단의 어떤 전차나 전투장갑차보다 앞에 서는 전투 장비입니다. ‘장애물개척전차’보다 ‘강습개척전차’ 또는 ‘강습돌파전차’라는 용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 만큼 최일선의 전차입니다.
우리 군이 장비하게 될 장애물개척전차의 모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ABV(Assult Breacher Vehicle)도 그 이름에 강습과 돌파, 파괴, 분쇄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M1 애이브럼스 전차를 개량한 ABV는 균형미가 돋보이는 M1 시리즈와는 생김새가 딴판입니다. 차제 전면에 달린 대형 쟁기와 집게, 파쇄기에서 거대한 버킷(기중기+삽날)까지 울퉁불퉁합니다. 전차포도 떼어내고 지뢰제거선형폭탄(Miclic)까지 달아 균형미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못생겼다는 게 일리가 있지만 임무를 생각하면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 전차는 전투의 최전방에 서야 합니다. 임무가 지뢰지대와 철조망, 콘크리트 방어벽 무력화에 있기 때문입니다. 통로를 개척하는 것이지요. 이 전차가 없다면 전차나 장갑차는 각종 장애물에 직접 대처해야 합니다. 지뢰에 궤도가 파손돼 가동 불능 상태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전차나 대전차화기로 무장한 적이 매복하고 있는 경우 아군 기계화부대가 축차적 소모를 강요당할 위험도 높습니다. 미군의 ABV를 보면 전차포를 떼어낸 포탑에 두꺼운 반응장갑을 덧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맨 앞에 서서 얻어 터질 가능성이 많기에 장갑으로 떡칠하는 것이죠.
피폭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투차량임에도 세계 각국은 장애물개척전차를 적극 개발 운용하고 있습니다. 전격전 전술을 창시한 독일은 2차대전 중 3호 전차에 마인 롤러(Mine roller)를 부착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이 지뢰를 얼마나 골치 아프게 여겼는가를 말해주는 무기가 하나 있는데요. 크룹사에서 2대를 제작했던 ‘Krupp Raumer S’라는 장비입니다. 이 장비는 한 마디로 무식하게 무겁고 큽니다. 무게 130톤짜리 차량에 달린 지름 2.7미터짜리 철제바퀴 4개로 지뢰를 밟아서 터트리는 장비였습니다. 실전에서 써먹지는 못하고 미군에 노획됐는데요. 얼마나 컸는지 사진으로 확인하시죠.
2차대전 중 나온 대지뢰 장비에는 쇠사슬을 고속으로 돌려 지뢰를 파괴하거나 파내는 형식도 있었습니다만 롤러 형식이 가장 효과적이었던 모양입니다. 독일이 2차대전 중 선보였던 마인 롤러는 테니스장을 고르는 롤러와 흡사했으나 전후에 등장한 마인 롤러는 보다 정교해졌습니다. 전차 앞에 달린 여러 개의 쇠바퀴가 지뢰를 밟아 터트리는 방식을 구소련과 이스라엘군이 주로 사용했습니다. 실전경험이 풍부한 이스라엘은 한번 사용 후에 재사용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에도 마인 롤러를 대량 운용해 세계 각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도 이를 본땄고 우리나라도 마인 롤러를 제작해 K-1전차에 부착하는 테스트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의 추세는 쟁기(Mine Plow) 방식입니다. 쟁기로 밀어내는 방식이죠. 초기 제품은 지면의 높낮이를 구분못해 지뢰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으나 요즘에는 자동적으로 일정 깊이의 지표면을 파내고 전자 감응장치까지 갖춰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합니다. 세계 주요국가의 최신 장애물개척전차는 대부분 마인 플라우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레오파트Ⅱ 전차의 차대를 이용한 독일의 코디악, 첼렌저Ⅱ의 차체를 사용하는 트로잔, 프랑스의 르끌레어 공병전차까지 마인 플라우 방식입니다. 하나같이 전차포를 떼어냈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강습돌파를 위해서는 지뢰 제거가 전차포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주요 국가들이 강습돌파를 중시하는 것은 지난 1991년 1차 걸프전을 통해 뼈저린 교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군에 비해 미군은 압도적인 기갑전력은 물론 항공전력까지 갖췄으나 제 아무리 최첨단의 전차도 지뢰 지역을 만나면 움츠러들었습니다. 미국은 군용 불도저라고 할 수 있는 M-9 ACE 공병차량을 이라크 전선으로 보냈으나 분명한 한계를 보였습니다. 미국이 447대나 보유했던 M-9은 평상시 땅 파고 흙을 옮기며 진지를 구축하는 데는 훌륭한 장비였으나 방어력이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주요 재질이 알루미늄이라 소총탄에도 뻥뻥 뚫렸다고 합니다.
걸프전이 끝난 뒤 미국은 M1 그리즐리 공병전투전차 개발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러나 그리즐리는 단 한 대의 시제품 제작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현존하는 어느 공병전차, 강습돌파전차보다도 뛰어난 성능을 지녔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2011년 그리즐리 프로그램이 취소된 이후 미 육군은 구형 M60 전차의 차대를 사용하는 M 728 공병전차를 아쉬운 대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인 상황에서 미국 해병대가 일을 냈습니다. 자체의 예산으로 앞서 소개한 M1 ABV를 개발해 배치한 것입니다. 52대를 주문한 미국 해병대는 이라크 반군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의 전투에서 4차례 AEV를 투입해 지뢰지대를 효과적으로 개척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해병대가 개발한 AEV의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증빙되자 미 육군도 187대를 주문하기에 이릅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생산된 AEV는 모두 39대인데요. 이 중에 6대가 작년 8월 한국에 주둔하는 미 육군 2보병사단의 공병대대에 배치됐습니다. 미 2사단은 한국의 비무장지대가 지뢰밭이라는 점을 들어 배치를 강력하게 요청해 이 장비를 육군에서는 최초로 수령하는 부대가 됐습니다. 한국 상황에서는 강습돌파전차가 필수라는 점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미국이 M1 전차의 차제를 바탕으로 파생형이라고 할 수 있는 AEV를 생산하는 이유는 제조시설의 유휴화를 막겠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996년 디트로이트의 전차 생산라인이 폐쇄된 후부터는 미국 유일의 전차 생산시설로 남아 있던 오하이오주 라이마공장이 폐쇄 위기를 맞을 만큼 일감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시설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연간 7대의 물량이 필요한데 AEV는 아쉬운 대로 부분적인 일감이 될 것입니다.(미국의 전차 생산라인이 닥친 위기에 대해서는 ‘탱크 종말론의 경제학’으로 검색하시면 제가 예전에 썼던 짧은 칼럼에서 대략이나마 현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차 생산라인의 폐쇄 위기는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닙니다. 연간 최대 000대의 전차생산능력을 지닌 우리도 언젠가는 맞닥뜨릴 문제입니다.)
미군이 ABV를 운영하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폭약으로 매설된 지뢰를 터트리고 삽과 도저로 밀쳐낸 뒤 처리해 생긴 통로로 기계화부대가 진격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의 핵심이자 첫 과정은 선형 폭탄입니다. 끈으로 묶여졌다고 해서 선형 폭탄인데요. AEV의 포탑 상부에 달린 M58 MICLIC(Mine Clearing Line Charges)이라는 장비가 있습니다. 미클릭을 발사하면 로켓에 달린 긴 줄이 따라서 나가는데 줄에는 소형이지만 강력하기에 테러에서 자주 악용되는 폭약(C4) 700개가 달려 있습니다. 로켓과 줄에 달린 선형폭탄은 전차부대가 지나갈 만한 너비로 100미터 지역의 지뢰를 단숨에 그것도 한꺼번에 폭발시킬 수 있습니다.
미클릭 발사 후에는 개척된 통로를 따라 AEV가 이동하며 거대한 지뢰제거쟁기를 이용해 그래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 지뢰를 끄집어내 통로 옆으로 밀쳐냅니다. 물론 이 과정에는 자기장이나 전파를 이용한 지뢰 탐지 기능도 함께 작동합니다. 옆으로 밀려난 지뢰는 AEV에 장착된 12.7㎜ 기관총으로 폭파하거나 뒤따르는 전문 폭파병이 처리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폭이 4미터, 길이 100미터의 지뢰로 안전한 진격로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비록 AEV가 적과 직접 포격을 주고 받지 않아도 피격 당할 위험이 가장 높은 것도 가장 앞서 위험물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투 상황이 아니라면 AEV는 삽날과 기중기를 이용해 전차의 매복진지나 부대 주둔지를 빠른 시간 안에 건설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전차가 최초로 선보인 시기는 1차대전 중이던 1916년인데요. 솜 지역의 전선에 영국제 마크1 전차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겹겹이 둘러친 철조망과 참호진지, 기관총좌로 대치가 계속되는 전선을 돌파하려는 목적에서 전차가 탄생한 것입니다. 총탄에 얻어맞더라도 전선을 돌파하려는 요구가 전차를 만들어낸 것이라면 강습돌파, 혹은 장애물개척전차는 최초의 전차가 지녔던 사명에 가장 부합하는 전차일지도 모릅니다. 분업화로 볼 수도 있고 돌고 돌아서 다시 왔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우리 군이 국산무기체계로 도입할 한국형 장애물개척전차도 미군과 비슷한 임무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개발방식은 업체가 정부의 돈을 받아 개발을 맡는 즉, 정부 투자 업체주관 연구개발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만 주요 핵심장비 3개 정도는 해외 부품 사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에 피어슨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가 생산하는 쟁기 등은 미군의 ABV에도 장착될만큼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기술이기에 무리한 국내 개발보다 해외 물자 수입으로 일찌감치 방향을 잡았습니다.
생산수량은 확정 단계가 아니라고 합니다. 강습돌파 전차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독일의 경우 1개 전차소대에 한 량을 배치하는 게 기본이라고 하는데요(이 칼럼을 쓰려고 자료를 다시 조사하면서 통일 독일연방군이 현역으로 운용하는 전차가 225량이 전부라는 점에 놀랐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주한미군을 기준으로 삼으면 대략 감이 잡힐 것 같습니다. 산지가 많기에 강습과 돌파보다는 화력집중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가정할 때 한국형 장애물개척전차는 기동 전력이 몰려 있는 중부 전선에 집중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제가 북한의 담당자라면 가장 두려워할 기갑 장비로 장애물개척전차를 꼽을 것입니다. 공격용 무기는 지니지 않았어도 핵심 방어망의 하나인 지뢰지대를 무력화할 비살상 무기를 잔뜩 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적이 겁내고 우리 군의 전력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라면 도입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마땅하나 우리는 계속 미뤄왔습니다. 최초로 소요가 제기된 시기가 1994년이니 전력화를 결정하기까지 무려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늦은 만큼, 오래 기다려온 만큼 좋은 성능의 국산 장애물개척전차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또 이 전차가 평화적으로 쓰이기를 함께 원합니다. 언젠가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비무장지대의 여러 곳을 남북간 연결통로로 이으려면 수많은 세월 동안 남과 북이 매설한 지뢰를 찾아내야 합니다. 이런 목적에도 장애물개척전차가 안성맞춤입니다. 긴장과 대치 상태에서는 군의 전투력을 높이고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면 과거의 위험을 없애는 장비로 활용될 장애물개척전차가 제대로 제작되고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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