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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죽은 금융, 산 금융(Ⅱ)


지난 4월23일자 이 코너를 통해 '죽은 금융, 산 금융'이라는 글을 올린 뒤 많은 금융인들로부터 답신을 받았다. 글에 대한 평가는 그렇다 치고 그들은 우리 금융산업의 현실에 대해 한결같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지난 수년 동안 금융인들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관치금융이라는 해묵은 주제에서 나아가 과거 5년 동안 이전 정권에서 맛본 참혹한 '정치금융'의 폐해에 대해 우리의 금융인들은 너무나 가슴 아파해왔다. '죽은 금융'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경험한 것이다.

금융인들은 대신 소망했다. 한국 금융산업의 심장에 십자가처럼 각인된 나쁜 금융의 그림자가 이 정권에 들어와서는 사라지기를. 때마침 새로운 금융수장인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금융인들에게 희망의 싹을 틔우기에 충분했다. "관치가 아니면 정치, 정치가 아니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라는 신 위원장의 발언은 한국 금융산업이 이제야 제대로 된 궤도에 들어설 수 있겠다는 상서로운 기대를 안겨줬다.

너무 기대가 컸을까. 새 정권이 들어선 지 4개월에 채 되지 않은 지금 공교롭게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화두는 '관치금융'이다. 그것도 과거와 같은 세련된 관치가 아니라 투박하고 촌스러운 관의 치(治)가 금융 전반을 휘감고 있다. KB금융 회장 인선과정에서 나온 신 위원장의 부적절한 발언은 사실 논란의 대상조차 아니다. 그런 사례는 역대 정권에서 비일비재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금융감독원 부원장의 한심한 행태다. 신 위원장에게 BS금융 사태는 개인의 금융정책 인생에서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자신이 그렇게도 배척하고 싶어했던 '금융의 정치화'를 다른 곳도 아닌 금융당국 스스로 실행한 것이다.

BS금융 사태는 그나마 외부로 노출된 일에 불과하다. 지금 금융권에서는 언론지상에 기사화되지 않은 한심한 인사행위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정권처럼 특출한 권력자가 없는 틈을 비집고 작은 힘을 등에 업은 정치인들이 인사에 관여하고 힘을 쓰려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인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권력 동향에 민감한 금융인들이 이런 모습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금융당국이 지배구조의 모형을 만들어놓고도 외부의 힘을 이기지 못해 틀 자체를 통째로 바꾼 것을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것뿐인가. 우리금융에 이어 인사가 이뤄질 광주ㆍ경남 등 지방은행장은 물론 후속인사가 예정된 KB금융에서도 계열사에서 한 자리를 해보겠다고 온갖 연줄이 동원되고 있다. 투서와 세몰이는 관행적으로 되풀이돼온 일이라 쳐도 망국적인 '정치금융'의 더러운 손길이 금융산업 전반에 다시 뻗치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 또다시 목도하고 있다.

청와대는 '좋은 관치, 나쁜 관치'를 구태여 구별해가며 인사의 정당성을 말하지만 관치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어쩌면 한가로운 일이다. 아니 말 자체가 맞지 않는다. '좋은 관치'의 사례로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거론되는데 그렇다면 임 회장을 제외한 다른 모피아는 나쁜 관치의 사례란 말인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청와대의 주장대로라면 전임 회장은 '나쁜 관치'의 사례인가. 모피아의 능력을 어떻게 자로 잰 듯 잴 수 있는지 모피아 스스로가 궁금해하고 있다. '전문성'이라는 가면을 들이대면서 관치의 정당성을 언급하려 했다면 지극히 지엽말단적인 발상이다.

청와대와 금융당국은 좋은 관치와 나쁜 관치를 구별하기 전에 지금 금융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습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인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인사개입의 음흉한 손길을 지금이라도 차단하지 못한다면 한국 금융산업은 또다시 암흑의 시간으로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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