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대규모 양적완화로 엔화가치를 끌어내렸음에도 장기 무역적자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는 엔화약세가 진전되며 일시적으로 적자폭이 커졌다가 올 여름 무렵부터 무역수지가 가시적으로 개선되는 이른바 'J커브' 효과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19일 발표되는 8월 무역지표도 14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갈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일본이 만성적자국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일본이 19일 내놓을 8월 무역수지지표가 14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가면서 지난 1979~1980년과 같은 역대 최장기 연속 적자 기록을 세울 것이라고 16일 분석했다. 당시 일본은 오일쇼크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로 14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다가 소니 워크맨 등 가전제품와 자동차 수출 급증 등에 힘입어 흑자로 급반등했다.
하지만 지금은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8월 무역적자가 1조1,000억엔을 웃돌며 전월 대비 적자폭이 확대된 것으로 예측했다. 앞서 재무성이 발표한 8월1~20일 무역수지는 에너지 수입증대로 전월동기 대비 44%나 적자폭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로이터는 아베 신조 정부 출범 이후 엔화가치가 급락하자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J커브 효과에 대한 기대가 고조됐지만 올해 일본의 무역통계 추이를 살펴보면 당분간 흑자전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J커브 효과란 통화가치가 하락해도 수출이 곧바로 늘어나지 않는 반면 수입액은 환율효과로 증가하기 때문에 경상수지가 개선되기까지 일정한 시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통화약세가 수출물량 증대로 이어지기까지 통상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걸리는 만큼 일본에서는 엔화가 약세 기조를 보이기 시작한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올 여름 무렵부터 수지개선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달러당 98~100엔의 엔저기조가 수개월째 이어지는 와중에도 수출물량이 좀처럼 늘지 않고 수입부담만 증가하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시장에서는 J커브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근 안전점검을 이유로 전국의 원전 가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에너지 수입부담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엔저가 오히려 무역수지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미즈호증권리서치의 미야가와 노리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언제 무역적자 기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가장 염려되는 것은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6월 이후 나타나고 있는 수출물량 정체가 일본 경제 회복의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엔저로 가격경쟁력은 높아졌지만 최근 신흥국들의 경기둔화와 제조업체들의 생산설비 해외이전이 지속되면서 엔저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시리카와 히로미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산업공동화로 엔저도 적자 흐름을 돌려놓지는 못할 것"이라며 "원전이 재가동되더라도 일본의 무역적자는 영구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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