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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가 좋았지…'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젊은 것들은…' 등 과거를 이상적으로 보는 말들을 우리는 많이 한다. 이런 풍조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옛날은 좋은 시절이었고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실(史實)이 아니다.
폭력의 측면에서는 어떨까. 인간은 점점 폭력적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많다. 가까운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무려 5,5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다. 이후로도 끊임없는 분쟁으로 희생자는 늘어나고 있다. 인간은 원래 폭력적이고 날이 갈수록 강도도 세지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원제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에서 폭력은 인간의 본성이고 점차 폭력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일부의 통념에 강하게 도전한다.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20세기 한복판에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모두 5,500만명이 사망했다. 역사상 단일사건으로는 1위다. 하지만 역사상 사건에서의 사망자를 전세계 인구 비례로 보면 9위로 떨어진다. 진짜 1위는 8세기 중국에서 일어난 '안녹산의 난'으로 당시 3,600만명이 죽었다. 이를 20세기 중반의 25억 인구로 환산하면 4억2,900만명에 해당된다. 2위는 13세기 '몽골의 정복'으로 4,000만명, 환산하면 2억7,800만명이다. 15~19세기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1,800만명이 죽었는데 이는 8,300만명(8위)에 해당된다.
저자는 기원전 8000년에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이쪽저쪽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인간 사회의 폭력현상을 살펴본다. 결론은 21세기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로운 시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들에게 도표와 통계치를 제시하면서 설득에 나선다. 살인과 고문 등 폭력의 발생 비율은 역사의 흐름속에서 점차 감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사람들은 폭력 현상이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고 인식할까. 이에 대해 저자는 미디어 영향과 개인적 심리를 꼽는다. 어느 시대고 미디어라는 것은 폭력이라는 '뉴스'에 주로 반응하면서 이를 부풀리는 역할을 한다. 절대적인 폭력 정도는 낮아지지만 인류의 도덕기준이 높아지면서 폭력이 일어났을 때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심리 체계가 환경변화에 적응하면서 폭력의 행사보다 오히려 협동과 평화를 선택하게 되는 과정을 규명하고 있다. 폭력의 감소를 촉발한 6가지 경향성을 추려냈다.
첫째 무정부적 수렵사회에서 농업 문명으로의 전이, 둘째 문명화 과정, 셋째 17~18세기의 인문주의 혁명, 넷째 1,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장기적인 평화, 다섯째 냉전 이후 충돌과 억압의 감소, 여섯째 1948년 세계인권선언 이후 인권 개념의 전파 등이 그것들이다.
물론 인간에게는 포식적 목적, 패권경쟁, 복수심, 가학성, 이데올로기 등 폭력 유발의 성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이입과 자기통제, 도덕 감각, 이성의 능력 등이 이에 맞선다. 내면에 존재하는 악의 근원에 맞선 선함의 우세를 이끈 역사적 동인들이 존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국가의 힘의 독점, 상업의 발달과 여성화, 세계주의, 이성의 촉진이 그 같은 내면의 변화와 이에 따른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무려 1,400페이지를 할애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책을 덮는 순간 분명히 깨닫는다. 인간의 폭력성은 어쨌든 줄고 있고 궁극적으로 이를 억제할 수 있다고. 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6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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