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매년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경쟁력과 함께 정치·경제·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순위를 발표한다. IMD 자료 중 우리에게 가장 충격적인 순위는 회계투명성에 관한 부분이다. IMD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60개국 중 26위를 차지했지만 회계투명성 분야는 59위를 기록해 가까스로 꼴찌를 면했다. 한국 기업들의 회계정보 신뢰성이 전 세계 주요국 중 최하위권이라는 이야기다.
韓 IFRS 도입 불구 회계 신뢰성 꼴찌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제도개혁을 실시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1년 실시된 국제회계기준 도입이다. 국제회계기준 도입 이후 국내 상장사들은 세계적으로 통일된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다. 외국 투자가들 입장에서는 국내 기업의 재무제표를 이해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에 국제회계기준 도입 결정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아직도 국제회계기준을 채택하지 않은 데 비하면 매우 발 빠른 결정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법률개정과 제도개선을 통해 내부 회계관리제도를 도입했고 감독기관의 감리제도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한국의 회계투명성 순위가 대만(20위), 일본(33위), 태국(34위), 필리핀(40위), 중국(55위) 등보다 낮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정부는 외부감사법 개정을 통해 유한회사도 감사를 받도록 하고 지정감사를 늘리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회계투명성 수준이 낮은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부족한 회계감사 시간과 낮은 보수다. 국내 상장사의 평균 외부감사 보수는 1억700만원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4억5,800만원으로 훨씬 많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평균 감사시간은 1,420시간인 데 반해 일본은 3,772시간으로 2배 넘게 길다. 감사제도가 가장 발전된 미국과 비교해보면 격차는 더 커진다. 미국의 경우 감사보수가 우리나라의 18배에 달한다. 국내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큰 삼성전자의 감사보수가 38억원인 데 반해 미국 인텔은 179억원에 달한다. 5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미 감사보수가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임에도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간 감사보수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이렇게 낮은 감사보수는 감사시간 단축을 초래하고 회계투명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감사는 투자, 보수·시간 대폭 늘려야
국내 상장사들의 감사보수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은 기업 경영진이 회계감사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감사보수를 비용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가 감사보수를 2배 이상으로 올려주겠다고 나서면서 회계업계를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해당 CEO는 회사 홍보를 위해 수십억원씩 사용하면서 회계감사에 10억원도 안 되는 돈을 아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철저한 회계감사를 요청했다. 이에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3배 이상의 감사시간을 투입했고 회사는 오히려 20억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회계사들도 전문직으로서의 윤리의식과 자긍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열악한 실상에 대해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제 살 깎아먹기식의 저가수임 경쟁을 지양하고 기업 감사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 회계사가 투자자 보호의 선봉장 역할에 충실할 때 우리나라도 회계투명성 선진국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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