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짓는 한국인 실력에 세계가 깜짝
해외 초고층빌딩 수주 '신의 손' … 전인미답 CM분야도 성공가도삼성물산서 직장 생활하던 시절, 페트로나스·타이페이 101 타워임전무퇴 정신으로 난공사 따내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보고 고민 거듭한 끝에 CM 길 들어서
김상훈기자 ksh25th@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CEO&Story] 이순광 한미글로벌 부회장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우뚝 서 있는 쌍둥이 빌딩 '페트로나스 타워'. 높이 452m로 지난 1998년 준공 이후 508m의 대만 '타이페이 101타워'가 준공된 2005년까지 7년여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특히 준공 당시 미국 CNN이 두 개의 빌딩을 잇는 스카이브리지 준공식을 생중계하는 등 세계적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삼성물산과 일본의 하자마 건설이 각각 한 동씩 시공을 맡아 자존심을 건 경쟁을 벌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지 유명세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설사(史)에서 갖는 의미도 상당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건설업체는 세계 초고층 빌딩 시장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페트로나스 타워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삼성물산은 이후 타이페이 101 타워를 비롯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 칼리파'를 짓는 등 명실상부한 초고층 빌딩 건설의 1인자로 올라섰다. 이른바 '퀀텀점프(대약진)'의 계기가 페트로나스 타워였던 것이다.
그 퀀텀점프의 주역이 바로 당시 삼성물산 해외견적 팀장으로 수주를 진두지휘했던 이순광 한미글로벌 부회장이다.
서울 삼성동 도심공항타워 한미글로벌 본사에서 만난 이 부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수주전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초고층 빌딩 건축 실적이 전무했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기술력에 모든 것을 다 건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천운으로 사전기술심사를 통과했습니다. 그후 본사 해외견적팀을 이끌고 말레이시아로 직접 날아갔고 현지 법인과 힘을 모아 결국 입찰전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천운이라면 천운이겠지만 돌이켜보면 하면 된다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각오가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는 100점, 가정에선 0점?=이 부회장의 일에 대한 집념은 30여년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에 대한 아내의 평가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나온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에 그는 "집사람에 물어보니까 회사생활 100점, 가정생활 0점해서 50점이라고 대답을 해주더라"며 껄껄 웃었다.
"후회가 남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으며, 또 인생에 어떻게 점수를 매기겠습니까. 다만 내가 회사생활을 시작했던 때만 하더라도 먹고 사는 게 힘들었을 시절이라 가치 기준이 가정이 아닌 직장에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결혼식을 올린 지 1년도 안돼 해외현장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집사람도 그걸 이해해줬습니다. 그래도 항상 가정의 화목이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임을 잊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다행히 그렇게 오랜 시간 해외에 나가 있었음에도 지금 집사람과는 사이가 너무 좋습니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열다=그렇게 그는 18년여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한 태도로 본인의 일에 헌신하며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하지만 일과 인생에 대한 허탈감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개발시대의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려온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다름아닌 '사고'였다.
"1990년대 초ㆍ중반 건설 쪽에 굉장히 많은 사고들이 일어났었습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면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유가족뿐만 아니라 온 사회가 아파했습니다. 그때 스스로에게 '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사고가 많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결론은 관리 부실이었죠."
마침 그가 근무하던 삼성물산에서 그 같은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한다며 외국인감리제도를 도입, 운영 중이었다.
이 부회장은 "당시 삼성물산에서 외국인 감리자가 건축물의 품질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신 현장소장을 갈아치울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권한을 줬다"며 "이 같은 외국인 감리제도가 발단이 돼 대학ㆍ직장 선배였던 김종훈 회장과 함께 세계적 CM(Contruction Management) 업체인 미국 파슨스사(社)와의 합작법인인 한미파슨스(한미글로벌의 전신)를 창립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이 종사하는 업종이 낳은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끝에 선택한 길이 바로 CM이었던 셈이다.
◇뚝심으로 이겨낸 가시밭길=CM이란 건설사업의 기획ㆍ설계부터 발주ㆍ시공 및 유지관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원가 절감뿐만 아니라 해당 프로젝트의 이해관계자 조정, 그리고 안전 문제에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종인 것이다. 쉽게 말해 건설이 건축물의 외관을 결정하는 '하드웨어'라면 그 하드웨어 과정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바로 CM인 셈이다.
문제는 당시만해도 용어가 생소할 만큼 한국에서는 CM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영역이었다는 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를 열자마자 IMF 환란이 들이닥쳤다.
"CM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는 상황이라 가뜩이나 프로젝트도 적은데 IMF 위기까지 겹치면서 그나마 있던 프로젝트가 줄줄이 중단됐습니다. 신규 프로젝트 발주는 아예 씨가 말랐죠. 120명의 직원 중 달러로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외국인이 50명이었는데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월급을 두세 배로 줘야 되자 3명 정도를 남기고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차마 국내 직원들을 자를 수는 없어 모두 돌아가면서 재택근무를 했던 시절입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한미글로벌에 IMF는 오히려 도약의 발판이 됐던 시점이기도 하다. 국난의 위기상황이라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장 건립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와중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상암 월드컵 주경기장을 CM형태로 발주한 것.
이 부회장은 "위기 상황이라 직원 모두가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다"며 "다행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CM의 효용을 인정 받았고 덩달아 한미파슨스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끝냈고 IMF 이후 국내 부동산 개발시장에 진출한 선진국 투자은행(IB)들이 CM 전문업체인 한미파슨스를 찾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급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건축 분야에서도 CM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지요."
2011년 현재 한미글로벌의 매출은 1,829억원, 순이익 35억원, 직원 수는 948명이다. 2008년 세계적 건설주간지인 미국의 ENR(Engineering New Record)는 한미글로벌을 세계 CM업체 중 16위로 꼽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국내 CM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이지만 만족하지 않고 해외시장도 적극적으로 공략해 글로벌 톱 10 CM업체로 올라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이순광 부회장은▲1954년 부산 ▲1974년 동래고 졸업 ▲1978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1977~1985 대림산업 ▲1986~1996 삼성물산 ▲1996 한미글로벌 프로젝트지원팀 상무 ▲2008년 한미글로벌 CM사업본부 부사장 ▲2011년 한미글로벌 대표이사 사장 ▲2013년~ 한미글로벌 대표이사 부회장
직원 급여 1% 사회공헌기금 등 '인간경영' 앞장■ 사회적 책임 실천하는 한미글로벌
CM 업계 1위 한미글로벌의 창립 이념은 '인간경영'이다.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겠다는 것. 최근 많은 기업들이 이 CSR에 발벗고 나서는 추세기는 하지만 한미글로벌은 이미 지난 1996년도부터 여러 방법으로 이를 몸소 실천해왔다.
한미글로벌 전임직원은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간편한 복장으로 봉사처로 향한다. 임직원 가족들까지 모두 모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과 지역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1996년 창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무려 17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은 행사다. 또 직원은 입사 때 봉사활동에 대한 서약과 급여의 1%를 사회공헌기금으로 공제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회사는 임직원의 사회공헌 기금에 2배를 내는 '더블 매칭 그랜트(Double Matching Grant)'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한미글로벌의 CSR의 영역은 단순 봉사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절대 가치인 이윤 창출에 매몰되지 않고 돈이 남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업들을 끊임없이 발굴해나간다. 그중 하나가 바로 'e집' 사업이다.
e집은 중소규모의 건축물을 위한 한미글로벌의 전문기술서비스 브랜드다. 국내 건설시장에서 개인 주거용 중소규모 건축의 비중은 전체의 25%에 달하고 매년 10만여건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 발주자가 비 전문가이고 공사 후 예산초과, 공기지연, 품질 문제 등뿐만 아니라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부실 문제까지도 지적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미글로벌은 중소규모의 건축에 CM기법을 도입한 e집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 것이다.
재능기부에도 인색하지 않다. 시민단체와 모 방송사 프로그램이 추진해 한때 유명했던 어린이 전용 도서관 설립 프로젝트 '기적의 도서관'도 한미글로벌이 CM을 맡았던 사업이다. 필리핀 직업훈련원, 인도네시아 체육관, 과테말라 직업훈련원 등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개발도상국에 무상으로 원조하는 건물의 CM을 맡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미글로벌은 기존의 CSR 활동에 더해 2010년부터는 '따뜻한 동행'이라는 복지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따뜻한 동행은 '장애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장애인과 장애시설 지원에 특화된 복지법인으로 전임직원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설립한 법인이다. 한미글로벌의 CM 기술력을 활용해 장애 시설의 개ㆍ보수나 신ㆍ증축 등을 지원하는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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