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 앞에서 선택 장애가 없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오죽하면 메뉴판에 ‘아무거나’라는 메뉴까지 등장했을까. 결국 ‘아무거나’를 택하더라도 메뉴판 앞에서 하는 고민은 행복한 고민에 가깝다. 어떤 맛일지 상상을 하고 과거에 먹었던 음식과 비교도 하며 함께 먹었던 순간들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해 인기를 얻고 있는 이타닉 가든의 손종원 총괄 셰프는 신간 ‘미식가의 메뉴판’에 대해 “다양한 나라의 메뉴판을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모아 놓은 박물관”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대로 책은 각국의 특색 있는 메뉴판 자료와 사회, 문화, 의학, 상업과 요리 역사의 흐름 속에 나타난 결정적인 순간들을 포착해 외식 문화가 생긴 이래 대중의 음식 취향과 미식의 유행, 마케팅이 어떻게 맞물려 진화했는지를 박물관에 전시하듯 펼쳐 보인다.
그렇다면 메뉴판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고대부터 중세 후반까지는 노점이나 준비된 음식만 먹을 수 있었기에 메뉴판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이 되어 프랑스 혁명 이후 귀족 전속 요리사들이 궁정에서 나오며 도시 곳곳에 식당이 생겨나면서 현대적인 레스토랑이 등장했다. 정해진 식사에서 고르는 식사로 전환되면서 ‘메뉴판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최근에는 태블릿으로 메뉴판이 나오고 주문까지 가능한 식당들이 많다. 메뉴판이 태블릿에 들어가면서 아쉬운 점도 있다. 식당마다 개성을 살리고 셰프의 특장점이 드러난 음식 이미지와 설명들이 사라졌거나 심플해졌기 때문이다. 태블릿으로 주문을 하다 보니 서버에게 메뉴 추천을 부탁하는 스몰 토크 역시 사라지고 있다. 음식을 보고 묻고 고르는 행위는 어쩌면 ‘에피타이저의 에피타이저’이자 식사의 첫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 소개된 메뉴판은 이처럼 사라져가는 추억의 식당 문화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메뉴판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취향과 계급, 사회의 변화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메뉴판은 박물관이자 미식 문화의 역사서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1800~1810년쯤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는 ‘레 트로아 프레스 프로방소’의 메뉴판에는 ‘플럼 푸딩’만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표기됐다. 영국적 뿌리를 환기시킬 의도이기도 했겠지만 프랑스 음식으로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플럼 푸딩’은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크리스마스 관련 음식으로 알려지며 인기를 얻었다.
시대에 따른 메뉴판의 트렌드도 흥미롭다. 귀여운 흑인 소년이 수박을 들고 있는 이미지를 비롯해 영화 포스터를 활용한 메뉴판 등에는 시대와 트렌드 그리고 당시 대중의 욕망과 니즈가 낭만적으로 펼쳐진다.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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