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시의 한 전통시장에서 60대 상인이 운전하던 1톤 규모의 트럭이 시장 내부로 돌진해 시민을 들이받아 2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운전자가 자신이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밟았다고 시인했다. 지난해 7월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청역 역주행 사고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운전자가 60대 고령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고령자 운전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4일 경기 부천 오정경찰서는 이달 13일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제일시장에서 발생한 트럭 돌진 사고 당시 현장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사고 트럭의 브레이크 제동등이 켜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현장에는 브레이크를 밟아 급제동을 하면 도로에 남는 타이어자국 ‘스키드마크’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에 일부 타이어자국이 있었지만 경찰은 선명하지 않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번 사고와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사고 트럭 내 페달과 브레이크를 촬영하는 ‘페달 블랙박스’를 확보했다. 영상 분석 결과 사고 당시 운전자 A(67) 씨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
A 씨는 평소 자신이 운영하는 수산물 가게 앞에 트럭을 세워두고 물건을 상하차한 뒤 후진해 인근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사고 당일에 A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물건을 내리고 후진하던 중 작은 외부 충격을 느끼고 잠시 내렸다가 차량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급히 다시 탑승한 직후 사고를 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재탑승 후 가속페달을 밟은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 씨가 가속페달을 밟은 경위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A 씨의 지병인 ‘모야모야병’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질환은 운전과 상관없고 운전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 씨의 아내 또한 A 씨가 꾸준히 치료받고 있는데다 그동안 교통사고를 낸 적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며 "남편이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고 해도 차량이 굉음을 내며 그렇게 돌진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차량 급발진을 주장하는 취지로 말했다. A 씨와 교류가 잦았던 시장 상인들도 사고 당일 A 씨의 모습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음주검사와 약물검사에서도 별다른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도로교통공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고 트럭 EDR(사고기록장치) 분석 등을 의뢰할 방침이다.
이번 사고는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연상케 할만큼 시민사회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청역 사고는 지난해 7월 1일 오후 9시 26분께 서울 중구 세종대로18길에서 제네시스 차량을 운전하던 60대 남성이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혼동해 인근 인도로 돌진, 9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친 사고다.
이번 사고로 한동안 불이 붙었다 잠잠해진 ‘60세 이상 고령자 운전’ 문제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 19만6349건 중 34%에 해당하는 6만6922건이 60대 이상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교통사고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29.7%, 2023년 32.5%로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는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자진해 면허를 반납하도록 장려하고 있지만 지난해 기준 반납률은 2.2%에 머무는 등 저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면허 반납률이 낮은 이유로는 부실한 보상이나 대체 교통수단 부족 등이 꼽힌다. 이에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면허 반납자에게 교통비와 교통수단 제공을 지원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자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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