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추석 연휴 직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법원의 결정으로 석방한 뒤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면직된 전 정권의 장관급 인사를 체포 50시간여 만에 풀어주는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하자 정치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검찰 해체로 인한 ‘수사 권력 비대화’ 논란에 직면한 경찰은 ‘정치 수사’ 의혹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이달 17일 국정감사에서 정치권의 뭇매를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체포 정당성을 두고 이 전 위원장과 공방을 벌였던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관련 수사 기록을 검토한 뒤 이 전 위원장의 추가 출석요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경찰은 이달 2일 국가공무원법상 정치운동 금지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이 전 위원장을 체포한 뒤 두 차례 조사를 진행했지만 이 전 위원장 측이 체포 부당성을 주장하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해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전 위원장 측 임무영 변호사는 이날 “언제라도 출석요구에 응할 계획”이라면서도 “3차 소환이 형식적인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직권남용죄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전 위원장은 체포 과정에 관여한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허위 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체포를 주도했던 영등포서 수사2과장이 이날 자 정기 인사를 통해 서울 중부경찰서로 전보 발령이 나면서 향후 경찰의 추가 신병 확보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전 위원장이 체포되기 전 이미 예정됐던 인사이동이기는 하지만 새로 취임한 박정보 서울경찰청장 체제에서 수사 방향이 재점검될 가능성도 거론되는 분위기다.
이 전 위원장은 체포 직후부터 줄곧 경찰의 체포가 적법하지 않았고 절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출석요구와 관련해 국회 출석 일정 등으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지만 경찰이 고의적으로 불출석 정황을 만들고 무리하게 체포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반면 경찰은 이 전 위원장이 여섯 차례 출석에 거부해 법과 절차에 따라 체포했다는 입장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의 공소시효에 대해서도 경찰은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이 직무 또는 직위와 관련 없이 선거법을 위반한 경우 일반적으로 공소시효를 6개월로 두고 있는 만큼 신병 확보를 통해 신속한 조사가 필요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 전 위원장 측은 “공소시효는 10년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맞섰다. 이 전 위원장 측 임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이 주장한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의 공소시효는 6개월이 아닌 10년이고, 따라서 아직 적어도 9년 6개월 이상의 여유가 있다”며 “경찰과 검찰이 주장하는 시기적 긴급성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적 공방은 이어지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도 야권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경찰이 이 전 위원장의 정치적 체급만 키워준 꼴이 됐다”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에 따른 과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해체의 여파로 수사 권력이 집중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방어해야 하는 경찰은 이 전 위원장 사태로 더욱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이달 17일 예정된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이번 사건을 두고 경찰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권력이 집중된 상황에서 정치 경찰이 될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경찰에 수사권이 집중되는 데 대해 이목이 쏠리는 상황에서 경찰이 이 전 위원장 체포를 다소 무리하게 강행한 게 아닌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이 전 위원장의 체포 과정 및 공소시효 등을 둘러싼 경찰의 입장을 분명히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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