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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공존할 수 있는 시대 열릴까…'하이브리드 통역' 등장

['생존위기 산업' 新시장 창출]

뉘앙스·발음·전문용어 이해 한계

오류 수정 등 '사람의 손길' 필수

디자이너는 AI 디렉터로 거듭나

기술보다 기획력·감각 중요해져

생성형 AI 고도화·협업 확대 속

인간 고유 전문성 키우는게 중요





서울의 한 국제회의 현장. 통역사 김윤정(가명) 씨가 반도체 국제 포럼의 동시통역 부스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화면에는 연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동 생성된 영어 번역문이 떠오른다. 김 씨는 그 문장을 참고해 화자의 의도를 살리고 전문용어를 맥락에 맞춰 바로잡는다. 사람과 인공지능(AI)의 협업은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통번역 업체 제이엠커넥티드가 개발 중인 ‘하이브리드 통역 솔루션’이 상용화된다면 가능한 장면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AI발 생존의 위기를 뚫고 새로운 기회를 여는 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통번역이 대표적이다. ‘제일 먼저 대체될 직업’이라던 우려를 비웃듯 통번역 시장은 생성형 AI 확산 이후에도 꾸준히 규모가 커지고 있다. 올 5월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이 발표한 ‘통역사의 AI 활용 및 인식’ 논문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통역사 109명 중 75.2%가 통역 작업 준비에 생성형 AI가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또 이 중 57.8%는 AI를 통역사의 역할을 보완하는 도구로 인식했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AI 자동화 시대로 향하는 과도기적 시점에서 어떤 분야든 AI와의 결합은 필수”라며 “이 과정에서 과거 데이터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는 인간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시대 통번역 업계의 활로는 사람과 AI의 분업 모델이다. ‘하이브리드 통역’이 새롭게 부상하는 것은 AI 홀로 뉘앙스나 문맥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일반적인 통역 과정에는 통역사 2명이 연사의 말을 번갈아가며 통역한다. 하이브리드 통역에서는 통역사 1명 대신 AI가 투입된다. 인간 통역사는 AI 통역의 오류를 수정하는 역할을 한다. AI가 연사의 음성을 문자화하고 이를 다시 음성화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AI 전문 업체 박정우 소이넷 대표는 “AI가 ‘주거지역’을 ‘죽어지역’으로 들어서 ‘residential area’ 대신 ‘dead place’라고 번역할 때도 있다”며 “전문 영역으로 분류되는 통역일수록 AI가 모든 용어를 학습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사의 발언 중 80%를 보편적인 언어라 분류한다면, 전문 영역으로 분류되는 20%를 보완하기 위해 인간 통역사가 필수라는 얘기다. 임지민 제이엠커넥티드 대표는 “의뢰인들도 AI를 100프로 믿지 못한다. AI 정확도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태”라면서도 “하이브리드 통역이 AI의 한계를 인정하고, AI 발전 속 인간의 역할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활용한 아트워크. 사진 제공=이소영 디자이너


창의성이 요구되는 디자인 분야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만 9465곳, 4만 1838명이었던 디자인 전문 업체 수와 종사자 수는 2023년 각각 2만 2580곳, 4만 2110명으로 증가했다. 매출도 같은 기간 약 4조 5402억 원에서 6조 4564억 원으로 늘었다. ‘비 내리는 서울을 그려줘’라는 간단한 명령어만으로 수십 개의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환경에서 디자인 산업의 인력과 규모는 오히려 불어나고 있다.

이는 디자인 툴이 발전하면서 디자이너가 디테일에 집중하거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에서 사람의 표정이나 손가락 등 섬세한 부분을 사람이 포토숍으로 수정하는 식이다. AI 일러스트레이터 이소영 씨는 “디자이너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디렉팅하는 팀장으로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며 “손 기술보다 기획력과 감각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전했다.



AI 제품 디자이너 조선영 씨는 “디자인을 구현해 시장 반응을 살피고 수정하는 데 보통 한 달이 걸렸는데 AI를 활용하면 일주일로 줄일 수 있다”면서도 “범용적인 디자인은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AI가 학습하지 않은 취향이나 유행을 반영할 때는 사람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활용한 아트워크. 사진 제공=조선영 디자이너


사람의 속내를 파고드는 심리상담 분야에서도 인간과 AI의 협업이 이뤄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심리상담 서비스 업체는 2020년 4889곳에서 2023년 7926곳으로 증가했다. 종사 인원도 같은 기간 2만 1763명에서 3만 2309명으로 늘었다. 접근성이 쉬운 AI를 활용해 마음 상태를 손쉽게 파악하고 필요시 대면 상담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연애와 같은 인간 고유의 내밀한 심리·취향파악에도 AI가 쓰인다. 스타트업 카인디는 AI 매니저를 활용한 소개팅 서비스 ‘듀리안’을 지난달 설립했다. AI 매니저가 이용자와 대화해 성향과 가치관, 대화 스타일을 파악하고 각 이용자에게 어울리는 연애 상대를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지난해부터 총 4차례에 걸친 베타 테스트 결과 AI가 맺어준 인연 중 실제 만남까지 이른 성사율이 38%에 달했다고 한다. 김하나 카인디 대표는 “AI니까 이용자들이 더 솔직하고 부담 없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털어놓았던 것 같다”며 “편견과 달리 AI가 사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연애라는 생각도 든다”고 설명했다.

다만 AI와 지속적으로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할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I가 고도화될수록 대체 가능성이 큰 업무보다는 인간 고유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전언이다. 이 교수는 “단순한 작업을 AI가 대신하는 상황에서 미래 근로자의 업태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AI의 편리함에만 안주한다면 가치판단, 창의성 등 인간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조차 위협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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