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들은 미국이 쥐고 있는 세계 패권이 중국의 급부상으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수십 년래 처음 등장한 미국의 본격적인 경쟁 상대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귀환과 미국이 이끄는 유럽의 안보 질서를 교란시키려는 이들의 노력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런 현상은 세계 강대국들의 부침 과정에서 나타나는 익숙한 패턴이다. 다만 최근 새롭게 드러나고 있는 놀라운 사실은 미국 정부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특별한 성공 요소들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국민적 단합을 깨뜨리는 자해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 분야의 고품질 연구에 대해 가장 포괄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네이처’ 인덱스부터 살펴보라. 네이처 인덱스는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 기고된 논문들을 추적한다. 최근의 순위는 과학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즉 중국의 약진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네이처 인덱스가 지목한 세계 10대 학술기관 가운데 9곳이 중국에 몰려 있다. 그러나 ‘톱 10’ 명단의 첫머리에는 미국 연구기관인 하버드대가 자리잡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파괴하려 애쓰는 바로 그 대학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하버드대와의 전쟁은 여러 면에서 기괴하다. 교내 반유대주의 척결을 명분삼아 트럼프 행정부는 학사 관리의 많은 부분을 정부에 양도하고 유학생들에 대한 개인정보를 넘기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여러 대학 가운데 하필이면 하버드대를 특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 하버드대의 반유대주의 정서가 유달리 강한 것도 아니다. 연방정부가 골라든 주된 무기는 하버드대에 제공되는 연방연구 기금 회수다. 하지만 정부의 주 타깃이 된 하버드대 소속 학술연구기관은 트럼프가 반대하는 ‘깨어 있는 이념(woke ideology)’과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더 이상 제공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연구 지원금의 90% 이상은 생명과학, 각종 질환과 의약품 및 기타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대학 부속기관에 돌아간다. 암 연구 지원금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이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네이처 인덱스 명단에서 하버드대는 거의 틀림없이 탈락하고 말 것이다.
물론 대학들도 문제가 있다. 필자는 대학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다룬 칼럼을 통해 유행을 타는 정치적 명분을 좇지 말고 다양성과 소외에 대한 집착을 끝낼 것과 학문적 탁월성으로 회귀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교육과 연구, 좀 더 넓은 학문적 환경을 고려할 때 미국의 대학들은 고등교육 분야에서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의 명문대에 입학하기를 원하는 전 세계 최고의 영재들이 보낸 입학신청서가 쓰나미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에서 이보다 더 주도적인 산업을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시진핑과 과거 중국 주석직을 놓고 다퉜던 정치적 라이벌인 보시라이는 사사건건 의견 대립을 보였다. 그러나 둘 모두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그들의 딸과 아들이 가야 할 곳은 하버드대라고 굳게 믿었다.
미국의 첨단기술 업체들이 북부 캘리포니아와 보스턴 지역에 밀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스탠퍼드대 등 명문 대학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처럼 독특한 이점을 파괴하려 작심한 듯 보인다. 현 행정부는 과학 분야에 제공해온 지원금을 차기 회계연도에 250억 달러 이상 삭감할 것을 제안했고 국내 명문 대학들을 상대로 공공연한 전쟁을 선포했다. 최근 하원을 통과한 예산안은 비영리기관 가운데 최고 명문 대학만을 가려내 이들이 받은 각종 기부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 응징 조치를 취하고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연구기관에 적용되는 세율을 대폭 인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즈니스에서는 ‘장미꽃에게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라’고 말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와는 정반대의 전략을 택한 듯 보인다.
미국은 지구촌 곳곳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끌어오는 능력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중국은 14억 명에 달하는 자국민 중에서 우수한 인재를 발탁한다. 그러나 미국은 80억 세계 인구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인력을 뽑아온다. 결과는 자명하다. 현재 미국의 10대 기업 가운데 다섯 곳이 이민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유학생 유치는 미국 경제 전체에도 도움을 준다. 지난해 동안 이들은 400억 달러 이상의 이윤을 창출했고 38만여 개의 일자리를 지지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는 바로 이런 유학생들에게 공격을 가한다. 비자 발급을 중지했고 유학생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시물까지 조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스스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듯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마음속에 늘 감시를 당하고 여차하면 약식으로 추방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놓았다.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미국 박사 학위에 관한 인터넷 검색은 25~40%가량 감소한 반면 오스트레일리아와 스위스 박사 학위 프로그램 검색량은 그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대략 40여 년 전 인도에서 미국 대학에 입학원서를 내려고 생각 중이던 필자는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 그들이 누리는 평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외에도 “우리의 출신지보다 우리의 목적지가 더 중요하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세계 전역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미국이라는 아이디어에 마음이 끌렸다. 불을 뿜는 경쟁이 전개되는 세상에서 이미 많은 나라들이 여러 방면에서 우리를 따라잡았지만 파괴하기보다 소중히 간직한다면 자유롭고 개방된 미국이라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미국이 지닌 독특한 이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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