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12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상대국에 대한 관세율을 115%포인트씩 대폭 내리는 ‘빅딜’에 전격 합의한 것은 무역 전쟁이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특히 관세율이 ‘50~60% 정도까지만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보다 실제 인하 폭이 더 컸고 중국에서도 희토류 수출 통제와 보잉사 항공기 인도 중단 등 미국의 반발이 컸던 비관세 조치에서 물러서기로 하는 등 양국이 ‘실질적인 합의를 이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다만 양국이 인하된 관세율을 90일간 유지하는 ‘일시 휴전’인 만큼 향후 협상 여부에 따라 무역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블룸버그통신·CNBC 등 매체에 따르면 이번 합의에 따라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율은 145%에서 30%로, 중국의 대미 관세율은 125%에서 10%로 각각 115%포인트씩 크게 낮아졌다. 미중 무역 전쟁 발발 전이었던 지난달 초 수준으로 관세율이 돌아간 것으로 서로에 대해 부과한 ‘보복’ 성격의 관세 대부분을 거둬들이고 각각 10%의 상호관세만 남긴 셈이다. 다만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30% 유지했는데 기본관세(10%)에 올 초부터 매기고 있는 이른바 ‘펜타닐 관세(10+10%)’를 더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이번 합의를 통해 희토류 수출 규제를 조치를 완화하고 미국 보잉사에 대한 항공기 인도 중단 조치도 중단하기로 했다. 두 조치 모두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노린 조치라는 평가가 나왔던 것으로 그만큼 이번 합의로 양국 간 무역 공방의 긴장도가 크게 낮아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과 중국이 상당히 진전된 무역 합의에 이르게 된 데는 강대강 대치가 지속될 경우 양국 경제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서로 공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관세발(發) 수입 축소에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널리 퍼졌다. 월마트·타깃·홈디포·로스 등 미국 4대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곧 마트 진열대가 텅 비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도 지난달 중국의 대미 수출액은 330억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418억 달러)보다 21% 넘게 급감하고 제조업 역시 수축 국면에 접어드는 등 무역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본격화하고 있었다. 제네바에서 협상에 나선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날 합의문 발표 이후 기자회견에서 “양국 대표단은 어느 쪽도 디커플링은 원하지 않는다는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도 담화문을 내고 “양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기대에 부합하고 양국 이익과 세계 공동 이익에도 들어맞는다”고 논평했다.
특히 양쪽 모두 향후 펜타닐 문제에 대해 논의를 계속 이어간다는 입장인 만큼 논의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관세 인하도 가능한 상황이라는 평가다.
미중 간 전격적인 합의 타결 소식에 시장도 즉각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홍콩 핀포인트자산관리의 지웨이 장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합의로) 낮아진 관세율은 예상보다 훨씬 낮다”면서 “90일 임시 조치지만 매우 좋은 시작점이다. 투자자들의 우려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 후이 JP모건 전략가도 “(관세로 인한 침체 우려에 따른)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압력도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관세율 인하가 90일 동안 유지되는 것인 만큼 양국 간 무역 전쟁이 일시적인 휴전에 그친 점은 시장에서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포괄적 무역 합의까지 이르지 못한 점 역시 한계로 지적된다. 단적으로 트럼프 1기 때의 사례에 비춰봐도 최종 합의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미중은 7년 전인 2018년 5월 각국 무역협상 대표가 워싱턴과 베이징을 오가며 협상을 시작했지만 최종 합의는 20개월이 지난 2020년 1월에야 이뤄졌다. 그 사이 미국은 25%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중국산 제품 규모를 계속 늘렸고 2019년 8월에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중국 역시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매겼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적당한 시점에 만나 ‘톱다운식’ 해법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빠르면 이번 주말 중국과 통화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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