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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이 소환되다

◆박태준 서울경제TV 보도본부장

꿈꿨던 ‘사람사는 세상' 이루지 못했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통령’ 10여년째 1위

2025년 아수라장의 대선 정국에 소환돼

‘뻔뻔한 정치판서 참회·사과로 부활’ 평가

“민주주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 되새겨야





지난해 6월이었다. 날이 좋았던 초여름 아내는 뜬금없이 봉하마을에 가자 했고, 그렇게 떠난 1박 2일의 짧은 여행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처음 방문했다. 평일 낮의 봉하마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봉분을 대신한 너럭바위 옆으로 국민 참여로 놓인 1만 5000여 개의 박석들이 저마다의 글귀로 그를 추모하고 있었다. 기념관에서 육성과 영상으로 생전의 대통령을 만났다. 최루탄 분말이 하얗게 쌓인 아스팔트 길에 홀로 앉아 있는, 제16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직후 국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봉하마을로 내려온 뒤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달리는. 육성만을 듣게 조성된 어둑한 전시실에서는 그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살짝 취한 듯 기분 좋아 보이는 그는 “오늘은 노래를 한 곡 하겠다”며 양해를 구한 뒤 선창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평생 ‘사람 사는 세상’을 치열하게 꿈꿨던 노무현이 2025년 5월 아수라장 같은 정치판에 소환됐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달 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2002년 노무현처럼 국민만 보고 간다”고 글을 올리더니 이달 4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정치를 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많이 본받으려 한다”고 또 그를 언급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을 마친 이재명 후보 역시 “23년 전 오늘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날”이라며 그를 소환했다. 심지어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놓고 ‘막장’ 드라마를 찍었던 국민의힘에서도 그를 이야기했다. 호준석 대변인은 7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처럼 (노무현 후보의) 그 담대한 승부수를 김문수 후보가 던지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같은 날 유상범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치가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그의 발언이 담긴 영상을 틀기도 했다.

그를 소환해야 하는 각자의 계산이 있을 것이다. 또 분명한 것은 노무현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부동의 1위라는 점이다. 지난해 갤럽 조사에서도 31%로 2위 박정희 전 대통령(24%)과도 큰 차이가 있었다. 소시민들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를 하고자 했던, 그래서 소신은 굽히지 않되 필요한 때 양보하는 용기가 있었고 권위 따위는 버릴 수 있었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던 그때, 특히 임기 후반의 노무현은 인기가 없었다. 지지자도, 언론도, 심지어 여당도 등을 돌렸다. 자신조차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그의 ‘정치적 부활’에 대해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을 8개월여 동안 연재한 중앙일보팀은 에필로그를 통해 이렇게 평가한다. ‘노무현을 끌어올렸던 반전의 원천은 무엇을 성공시켜서가 아니었다…노무현처럼 사과를 많이 한 대통령이 없었다. 그의 마지막 사과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그 마지막 사과는 파멸의 낭떠러지에 몰렸던 주변을 기사회생시켰고 나아가서 스스로의 정치적 부활을 만들어냈다. 통합의 정치에는 실패했으나 노무현은 어느 대통령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사과와 참회로써 모든 허물과 과오를 덮을 수 있었다(뻔뻔한 정치판, 그가 그립다…실패한 노무현 이유 있는 부활).’

이제는 정치를 한다는 누구에게서도 사과와 참회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뻔뻔한 정치판’에서 20여 일 후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선거가 다시 치러지고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가야 한다. 이미 승기를 잡았다는 듯 안하무인의 정치를 하는 야당의 후보와 탄핵된 전 대통령의 그늘에 갇혀 국내 정치사에 길이 남을 ‘대선 후보 바꿔치기 쇼’를 보여주려 했으나 결국 실패한 과거 여당의 후보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일이다.

‘통합의 정치로 사람 사는 세상’은 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불안감만 가득한 요즘, 그가 묻혀 있는 봉하마을 묘역의 너럭바위가 떠오른다. 그곳에 지역주의 청산과 국민 통합을 실현시킬 바른 정치가 있다고 굳게 믿었던 ‘바보 노무현’이 평생 강조한 말이 새겨져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다”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래도 깨어 있어야 한다”고 그는 지금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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