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발 뒤로 물러나 우리의 현 위치를 살펴보자. 미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인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이들 두 나라는 지구촌 전체 생산량의 45%, 전 세계 교역량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미국은 어이없게도 충분한 사전 계획과 검토조차 거치지 않은 채 다짜고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일단 총부터 쏘고 생각은 나중에 하자는 미국의 무책임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스마트폰의 80%와 컴퓨터 모니터의 78%는 중국에서 들어온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단 몇 달 안에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공급원을 찾을 수 있을까. 반면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대량으로 수입하는 오일과 가스, 대두와 돼지고기는 전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집권 2기부터 수년에 걸쳐 몽유병자처럼 의식이 몽롱한 상태로 중국과 경제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과 비교하면 그 당시의 경제전쟁은 미미한 충돌에 불과했다. 지금 미국으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중국산 제품에는 145%의 관세가 매겨졌다. 이에 맞서 중국도 자국으로 들어오는 미국산 제품에 1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의 말대로 이는 기본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금수 조치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베선트의 직속 상사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도대체 왜 지속 불가능한 전략을 채택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중국은 양국 관계 훼손에 중요한, 어쩌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트럼프가 4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인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방측 기술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야심 찬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경제 프로젝트를 발진시켰다. 이에 앞서 시 주석은 전임자들에 비해 훨씬 야심 차고 모험적이며 군국주의적인 일련의 대외 정책을 추진해 미국의 의심을 샀다. 여기에 중국과의 교역이 특히 선거에서 중요한 여러 주에서 일자리 손실을 초래하는 현실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매파적인 시각이 강화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덜 얽힌 관계가 전략적 위험을 줄일 수 있을까. 첫째, 두 나라 경제의 분리(decoupling)는 미국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가 제시한 관세 시나리오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관세가 없는 때에 비해 1.4%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매년 수천억 달러에 상당하는 부의 손실을 의미한다. 또한 기업들의 공급망 이전에 따른 인플레이션, 전문화 감소로 인한 생산성 손실과 혁신 생태계 교란으로 발생하는 기회비용 등 2차 영향도 따라온다.
미국이 취하는 모든 조치는 중국의 반응을 불러온다. 테크놀로지를 생각해보라. 워싱턴은 베이징의 최고급 칩 접근을 제한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과연 그것이 효과적일까. 칩 제조와 인공지능(AI) 부문에서 화웨이와 딥시크 같은 중국 기업들은 이제 최첨단에 근접한 결과물을 미국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다.
최근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인 젠슨 황은 전 세계 AI 연구원의 절반이 중국인이고 중국은 전반적인 AI 역량에서 미국에 간발의 차로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중요한 것은 기술 분야에서 승리하는 국가는 때로는 혁신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나라이지 선구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비싸고 거추장스러운 기술 접근 금지 조치는 오히려 베이징의 혁신을 촉진해 발 빠른 추격자가 되도록 부추긴 것인가.
마지막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 관계가 거의 없는 세계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교역, 투자와 상호 교류 등으로 두 나라를 경제적으로 깊숙이 엮어놓는 것은 전면적인 갈등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전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도 전쟁을 억제하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된다.
과거의 교훈적인 사례가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침략 행위가 확대되던 1940년 미국은 도쿄를 상대로 특정 품목에 대한 금수 조치를 취했다. 이어 1941년 7월 미국은 일본의 본격적인 동남아시아 침공에 따른 대응으로 일본 자산을 동결하고 석유 수출을 중단했다. 당시 일본은 국내 석유 수요의 거의 90%를 미국에서 수입했다.
그 결과는 일본의 항복이 아니라 진주만 공습이었다. 중요한 수입품 공급이 끊기고 외교적 출구조차 없는 상황에서 도쿄는 목이 졸려 죽기보다 차라리 전쟁을 택하는 편이 낫다고 결론지었다. 일본이 전쟁을 선택한 것은 제재, 관세, 분리와 고립이 평화와 번영으로 끝나는 역사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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