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국내 상위 20개 건설사의 공사 미수금이 15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년 새 4조 원 늘어난 규모다. 지방 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 등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늘어나면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시공능력평가 상위 건설사 20곳의 공사 미수금은 총 15조 1700억 원으로 전년(12조 9000억 원)대비 약 18% 증가했다. 2년 전보다는 3조 7000억 원 늘어난 규모다. 매출에서 미수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10.8%에서 지난해 11.4%로 커졌다. 미수금은 건설사가 공사를 완료하고도 조합이나 시행사로부터 받지 못한 돈을 뜻한다. 이들은 보통 분양 수익으로 공사비를 마련하는데, 미분양이 발생하거나 대출금을 갚지 못해 사업이 중단되면 건설사는 소송을 통해 대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건설사들의 공사 미수금이 쌓이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지방 주택과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가 꼽힌다. 과잉 공급에 분양 실적이 저조하자 대출금조차 갚지 못하는 ‘좀비 사업장’이 증가했고 그 불똥이 시공사로 튀고 있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건설사의 분양률 70% 미만 사업장 관련 매출 채권 규모는 총 2조 7000억 원으로, 이 중 수도권 외 지역 비중이 73.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생활숙박시설도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의 규제로 실거주가 어려워진 이후 수분양자들이 사기분양과 부실공사를 주장하며 잔금을 치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 강서구 ‘롯데캐슬 르웨스트’ 시행사는 결국 올해 초 수분양자의 약 80%에게 계약 해제를 통보했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인 롯데건설은 지난해 말 기준 1200억 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아직 받지 못했다.
상업용 시설도 골칫거리다. 태영건설은 지난해 6월 고양시 향동지구에 지식산업센터를 준공하고도 250억 원의 공사비를 수금하지 못했다. 올해 2월 기업회생을 신청한 시공능력평가 71위의 삼부토건도 지난해 8월 공사를 마친 경산 물류창고 신축공사 사업장에서 120억 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
건설사가 발주처에 아직 청구하지 못한 미청구 공사비도 쌓이고 있다. 지난해 건설사 20곳의 미청구 공사비는 17조 원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는 소폭 감소했지만, 2023년(14조 6000억 원)보다는 16% 증가하는 등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건설사는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예상외에 발생한 자잿값이나 인건비를 선(先) 투입하는데, 이를 미청구 공사비로 부른다. 건설 경기가 좋을 때는 자산으로 평가받지만, 침체기에는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우발부채 성격을 띤다. 건설 업계에서는 매출 대비 적정 미청구 공사비 비율을 25% 이하로 본다. KCC건설은 이 비율이 2023년 15%에서 지난해 26%로 급격히 높아졌다. 대방건설(10%→18%)과 태영건설(15%→19%) 등도 비중이 상승했다.
이처럼 ‘돈맥경화’ 현상이 짙어질수록 경영난을 겪는 건설사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신동아건설·벽산엔지니어링·삼부토건·대우조선해양건설·대흥건설 등 올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중견 건설사도 벌써 10곳을 넘어섰다.
올해도 건설사들의 미수금은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오는 7월부터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가 도입되는 등 대출 규제가 강해지면서 지방 주택 시장 역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 투자와 창업 인원이 감소하면서 상업용 시설도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지식산업센터 거래량은 672건, 거래금액은 2569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5년 내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반면 공급은 앞으로 더 늘어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전국에서 건축 중인 지식산업센터는 총 84건, 미착공 물량은 223건으로 집계됐다. 중견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와 상업용 부동산 수주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면 중단한 상태"라며 "매출이 줄어들면 부채 비율이 커질 수밖에 없어 재무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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