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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 보이는 '디지털 노동' 허상을 꼬집다

청담 송은서 트로마라마 개인전

2층 벽면 가득 설치작품 등 전시

사회 고립·고된 노동현실 드러내

트로마라마, ‘Contract(2025)’. 사진 제공=송은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Photo : STUDIO JAYBEE




트로마라마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송은의 지하 2층 전시 전경. 알고리즘에 반응해 리코더, 멜로디언 등 아날로그 악기가 자동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작품 ‘퍼플 컬러(2025)'와 #즐거움(Pleasure)이라는 해시태그에 진동하는 시계를 찬 퍼포머들이 신호에 맞춰 공놀이를 하는 작품 '반팅 툴랑(Banting Tulang, 2025)’이 설치돼 있다. /사진제공=송은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Photo : STUDIO JAYBEE


희고 검은 젖소 무늬와 거죽 아래 붉은 근육을 추상화한 벽지가 2층 전시장 사방을 뒤덮은 가운데 한쪽 벽면에 설치된 컵라면 스피커에서 독특한 사운드가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 사운드는 소셜미디어 X(엑스)에서 #힘(Force)이라는 해시태그가 포함된 트윗을 실시간으로 추출해 가공했고 벽지는 매일 우유를 생산해 농가에 안정적인 돈벌이를 제공하는 ‘캐시카우’를 은유한다. 사용자들이 디지털 플랫폼에서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어느새 플랫폼 기업의 막대한 수익원이 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은 작품(Contact, 2025)이다.

지하 2층 전시장에는 건설용 그물망으로 제작한 원형 구조물이 설치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색색의 고무 공이 뿌려졌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디지털 시계를 손목에 찬 여러 명의 퍼포머들이 구조물로 들어와 시계의 진동에 맞춰 고무 공을 던지는 ‘놀이’를 한다. 시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해시태그 #즐거움(Pleasure)에 반응하도록 조작됐지만 퍼포머들은 무표정하고 수동적이다. 작품명 ‘반팅 툴랑(Banting Tulang)’은 인도네시아 관용어로 ‘뼈를 깎는 노동’을 뜻한다고 한다.

2일부터 서울 청담동 송은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인도네시아 3인조 작가 그룹 트로마라마(Tromarama)는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디지털 미디어의 영향력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2016년 광주비엔날레와 2022년 리움미술관 그룹전에 참여하며 한국 관람객을 만난 적 있지만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개인전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트로마라마. 왼쪽부터 페비 베이비로즈, 허버트 한스, 루디 하투메나. 김경미기자




2006년 결성된 그룹은 1984~1985년생 페비 베이비로즈와 허버트 한스, 루디 하투메나로 구성됐다. 이들은 반둥 공과대학 재학 시절 뮤직비디오 제작을 협업하며 처음 만났다. 당시 수백 개의 나무 합판을 일일이 손으로 조각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는데 그 경험이 ‘트라우마’를 유발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때의 충격으로 이름까지 ‘트로마라마’로 붙인 이들은 이후 설치와 사운드,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디지털 미디어의 허상을 밝히는 작업을 해왔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파노라믹스’가 대표적이다. 푸른 식물들이 청량하게 살랑거리는 자연의 풍경이 거대한 LED 화면 속에 펼쳐지는데 갑자기 바람이 강해지는가 싶더니 화면 자체가 커튼을 젖힌 듯 훌쩍 넘어가 버린다. 다시 잔잔해지는 바람과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온 초록빛 풍경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디지털 영상이 결국은 진짜가 아님을 재치 있게 보여준다.

트로마라마의 ‘파노라믹스(2015)’가 설치된 전시장 외부의 모습. 사진 제공=송은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Photo : STUDIO JAYBEE


최근작들은 겉으로는 효율적으로 연결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립되고 피로함이 가득한 디지털 노동을 화두에 올린다. 노동과 여가가 복잡하게 얽혀 끝없이 변형되고 확대되는 플랫폼 노동의 현실에 비판적으로 접근한 작품들이 전시장 곳곳에 즐비하다. 1층 로비에 설치된 ‘올인(All In)’은 낡은 종이 달력 더미 위에 시침·분침을 제거한 디지털 시계를 올려 손에 잡히지 않는 디지털 세계의 시간 개념을 환기한다. 출근 카드를 수백 장 이어 붙여 마치 가림막처럼 구성한 작품(Dear oh dear oh dear me, 2025)은 업무가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지 점점 더 흐려진 채 마치 일상의 장식처럼 돼버린 오늘날의 노동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트로마라마, ‘Dear oh dear oh dear me(2025)’. 사진 제공=송은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Photo : STUDIO JAYBEE


이번 전시에는 해시태그에 반응하는 자동화된 알고리즘이 특히 많이 사용됐다. 한국을 찾은 트로마라마는 “인간이 알고리즘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알고리즘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게 아닌지 고민하며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5월 24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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