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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24회>

연합뉴스




24. 아버지의 유일한 유산

“진욱아.”

십자매 한 쌍의 본래 주인이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담자야.”

핸드폰을 통해 전해오는 진욱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진중했다. 장례식장에서도 진정 위로가 되었던 목소리였는데, 그때보다 따뜻함이 더 묻어 있었다.

“아버지 장례식에 와서 긴 시간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 아버지는 항상 네가 내 곁에 친구로 남아 있기를 바라셨지.”

“나야말로 아버님을 많이 좋아하고, 아버님을 가장 존경했잖아. 아버님 덕분에 내가 그나마 사람이 된 것 같아. 곁에 안 계셨으면 부정(父情)을 모르고 자랄 뻔했다.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 아버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등록금이 없어서 쩔쩔맬 때도 아버님은 나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주시곤 했지. 공짜로 주지 않으신 이유를 어른이 되니까 알겠더라. 그건 그렇고, 많이 힘들었지. 너를 좀 더 챙겨야 했는데, 아내 출산 때문에 미처 그러지 못했구나.”

“어, 아기가 나왔냐?”

“엄마를 닮은 이쁜 공주님이 나왔어.”

“그랬구나. 네 목소리가 본래 다정하지만 뭐랄까 부드러우면서도 생명력이 더 느껴졌거든. 정말 축하한다. 많이 기다린 아기잖아. 이럴 때, 친구로서 어떻게 기쁜 마음을 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꽃다발은 도리어 아기의 호흡에 해가 될 것 같고, 과일이 산모에게 유익한가? 아, 유모차가 필요한가?”

“아직 유모차를 탈 시기는 아냐. 미란 씨가 몸을 좀 추스르면 너 보러 갈게.”

“그것보다 내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새를 좀 부탁할까 하고, 여행 가려고.”

“그렇구나. 지금 몇 마리지?”

“한 마리 남았어. 아버지 장례식에서 돌아오니, ‘그리’가 거의 죽어가고 있더라고.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리’가 죽자 남은 ‘도리’가 목소리를 잃어버렸어. 이놈을 보고 있으려니 너무 괴롭고 애처롭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내가 6년 전 해외여행 떠나면서 너에게 맡긴 새들의 후손인데, 당연히 내가 맡아야지. 그런데 미란 씨가 임신하면서부터 내 결정력이 없어졌어. 아기에게 해로운 것은 어떤 것이건 허용되지 않아서. 아내가 아끼며 키우던 개도 친정집으로 돌려보냈거든. 아기에게 해롭다고 일체 동물을 못 들이게 해서……미란 씨에게 물어보고 대답해도 될까?”

“그렇구나. 그렇다면 내가 다른 곳에 알아볼게. 출산한 곳에 기쁜 것을 보내주어야 하는데 노래도 부르지 않는 우울한 새를 보내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거든. 하지만 너에게 맡기지 않고 다른 곳에 맡기면 네가 섭섭해할 것 같아서 먼저 물어본 거야.”

“그럼 어디에 맡기려고?”

“어머니 댁에. 어머니도 적적하실 테니 새가 가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머니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능력이 있으시니까 어쩌면 새의 마음도 풀어줄 수 있을지도.”

“어머님을 두고 떠나려고? 어머니 곁에 당분간 있는 것이 좋을 듯한데.”

“어머니와 1주일을 같이 보냈어.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신 것 같아.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내가 계속 분주해 보인다고 하시더라고. 1주일이 지나자 내 아파트로 돌아가라고 하시더라.”

“…….”

“이상하지. 어머니와 있을 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내가 계속 분주하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어.”

“지금은 어때? 네 아파트에 있으니까 분주하니 아니면 조용하니?”

“오늘 종일 아파트 빈터를 왔다 갔다 한 것이 전부야.”

“네가 매우 분주하게 살긴 했지. 그것을 갑자기 멈추니까 공허해서 그럴 거야. 다시 일을 시작하면 지금 느끼는 허망함이나 슬픔은 점점 가라앉을 거야. 한 생명이 가면 다른 생명이 오는 것이 인생이더라고. 나도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내 몸에서 새로운 생명이 왔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지 몰라.”

“네 집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드높겠구나. 나는 여태 혼자 살면서도 외로움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고, 집안이 조용하게 유지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집안이 조용한 것이 아니라 끔찍한 침묵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야. 새가 울지 않다니! 사람이 울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더 끔찍해.”

“담자야! 어머님도 울지 않는 새를 바라보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우리 집에는 아기 울음이 있으니 도리어 새가 울 수도 있을 것 같아. ”

“아니야. 울지도 않는 새 한 마리를 아기 출생 축하 선물로 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리어 새를 회복시키기 위해 애쓰시면서 슬픔을 잊을 수도 있을 거야. 어머니는 그런 분이시잖아. ”



새 한 마리 때문에 여행을 떠나기도 힘든 것이 인간인데, 아버지는 어떻게 나나 어머니를 두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무섬증이 들었다.

“진욱아, 아버지가 그립다. 너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는데, 어떻게 견뎠니? 내가 그런 감정을 전혀 몰라서 너를 돌아보지 못했다.”

“무슨 소리! 아버님이 나를 아들처럼 대해도 너는 질투도 잘난 척도 하지 않았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미란 씨를 만나게 된 것도 네 덕분이잖아. 이쁜 아기를 얻은 것도 네 덕분이야. 네가 내 짝을 찾아주었으니, 내가 네 짝을 찾아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으련만.”

“하하. 아버지가 되더니 농담도 다 하네. 네가 내 짝을 찾아주다니…….”

갑자기 목이 메었다.

“새도 짝을 잃었다고 울지 않는 것을 보니 짝의 의미가 처음으로 진하게 다가오긴 한다.”

“그런데 왜 떠나려고 해. 공식적인 일로 떠나는 거야?”

“내 삶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마음이 정해져 있었어. 세계적인 작가와의 대담에서 완전히 실패하면서 내가 많이 무너졌거든. 그렇게 간단하게 나를 무너뜨린 것은 단 한 문장 때문이었어.”

나는 그것이 성경에 있는 한 문장이라는 말을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그래서 버릴 것은 버리고 떠나기로 마음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여행이 스톱 된 거야.”

나의 대담을 보시고 아버지가 충격받아서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그랬구나!”

“아버지 생전에 원하는 것을 이루어드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가 참빛을 찾기를 원하셨어. 진리 말이야.”

내 말을 들은 진욱이 움찔 놀라는 움직임이 전해져왔다. 진욱은 더 가라앉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담자야. 아버님이 병원에 계시는 기간에 전화로 나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어. 그것을 네게 전해 줘야 할 것 같아.”

순간, 나에게 남겨진 유산이 진욱에게 맡겨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다운 결정이었다. 아버지는 나뿐만 아니라 진욱에게도 필요한 만큼의 유산을 남겼을 것이다. 진욱은 나의 의형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너에게 꼭 남기고 싶은 책 한 권이 있다고 하시더라.”

“책 한 권?”

“아마 유산에 관한 정보가 있나 봐. 그 안에 모든 보화가 들어 있다고 하시더라.”

“네가 가지고 있니?”

“아니. 아버님은 네게 말을 전하기만 하라고 하셨어. 어머니가 가지고 계시는 것 아닐까.”

“어머니는 너와 비슷한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책인 것조차도 알지 못하셨어. 아버지가 나에게 전해지도록 조치해놓으셨을 것이라고만 하시더라.”

“분명 책 한 권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이나 전달할 사람을 나도 알지 못해.”

“…….”

“언론을 통해 아버님이 전 재산을 다른 이들을 위해 기증했다는 소식은 나도 읽었어. 너에게 남긴 유산은 비밀인 셈이지.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에게는 밝히지 않을게. 하얀 가죽으로 싼 책이라고 했어. 너에게 어떤 식으로 건 전달되도록 해두셨을 거야.”

▶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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