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1500만 원’ 때문에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자신이 총재로 있는 자민당 초선 의원들에게 1인당 10만 엔(약 1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치자금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이시바 총리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퇴진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일본 주요 매체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 의원 사무실 비서는 지난 3일 초선 중의원(하원) 의원 15명에게 인당 10만 엔(약 1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전달했다. 이는 같은 날 저녁 예정된 회식을 앞두고 제공된 것으로, 이시바 총리는 이를 ‘기념품’ 또는 ‘오미아게(간단한 선물)’로 해명했다.
일본에서는 관례적으로 2000~3000엔 정도의 오미아게를 주고받는 문화가 있지만, 10만 엔이라는 금액은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초과한다. 논란이 커지자 초선 의원들 중 상당수는 상품권을 반환했다.
이시바 총리는 상품권을 제공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치활동을 위한 기부가 아니므로 정치자금규정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법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직선거법에도 위반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하며 “많은 분께 걱정을 끼쳐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깊이 사죄한다”고 덧붙였다.
이시바 총리의 사과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정치자금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정치단체 간 금전 수수는 불법이 아니지만, 개인이 정치인에게 금전이나 이에 준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전했다. 총무성도 상품권과 같은 유가증권을 금전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의 상품권 제공이 정치자금규정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위법 판정이 내려질 경우 제공자와 수령자 모두 1년 이하의 금고형이나 50만 엔(약 49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정치학자인 이와이 도모아키 니혼대 명예교수도 “10만 엔은 사회 통념상 기념품으로 통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논란은 이시바 총리가 그동안 자민당 내 비자금 연루 의원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정치 자금 스캔들’을 근절하겠다고 주장해온 터라 더욱 파장이 크다. 정치 개혁을 강조해온 총리가 오히려 스스로 법 위반 의혹에 휩싸인 것이기 때문이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오가와 준야 간사장은 “정권 퇴진을 포함해 심각한 사태로 인식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당의 한 관계자는 “상품권을 준 총리 측도, 받은 자민당 의원 측도 언어도단”이라며 “이시바 총리의 퇴진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여당인 자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오는 6월 도쿄도의회 선거, 7월 참의원(상원) 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현재 리더십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은 30% 안팎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이번 논란이 확산되면 자민당과 정부의 지지율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내 보수파 의원들은 이시바 총리에 대한 퇴진 압력을 높이고 있다. 니시다 쇼지 의원은 “지금 체제로는 참의원 선거에서 싸울 수 없다”고 직격했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던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과 고바야시 다카유키 의원 역시 이시바 총리를 강하게 비판하며 지도력 상실을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시바 총리는 위법성을 부정하고 있지만 야당과 자민당 내부에서도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며 “이번 논란이 정권 유지에 중대한 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요미우리신문 역시 “자민당 내부에서도 동요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하며, 지지통신은 “이시바 총리가 당내 이해를 얻을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아부의 외교’를 펼치고도 관세 폭탄을 그대로 맞게 된 점도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12일부터 전세계를 상대로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은 이시바 행정부의 기대와 달리 ‘예외 조치’를 받지 못했다. 관세 부과에 이어 이번 상품권 스캔들 논란이 일면서 이시바 총리의 지지율이 더욱 하락하면 ‘이시바 끌어내리기’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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