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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영웅들을 위한 기도

■김경훈 디지털편집부장

순직·공상 소방관 연 1336명 달해

5년전 국가공무원으로 전환했지만

열악한 장비·근무여건 등은 그대로

자부심 가질 수 있게 정치권 나서야





“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2010년 방영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한 장면에서 내레이션으로 소개돼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던 ‘소방관의 기도(Fireman’s Prayer)’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화재 사고 당시 순직한 소방관의 책상에 걸려 있다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사람들은 이 시가 드라마에서는 다시 보이기를 원하지만 실제 소방관의 죽음이라는 현실과 맞닿아서는 회자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지난해 12월 4일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소방관’이 400만 명에 가까운 관객 수를 동원하며 흥행 중이다. 이 영화는 다시 마주하는 것이 무척 힘들지만 반드시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할 그날의 아픔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하루하루가 마지막 현장인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1년 3월 4일 새벽 3시께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2층 다세대주택 건물 붕괴로 구조 작업 중이던 소방관 6명이 순직하고 3명이 크게 다쳤다.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소방관이 사망했다.

당시 대원들은 1차 수색으로 모든 구조 대상자를 피신시켰으나 ‘안에 아들이 있다’는 말에 재수색에 들어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 세상의 모든 죽음을 슬픔과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소방관들의 죽음에 유독 많은 사람이 특별한 감회를 갖는 것은 자신을 희생해 남의 생명을 구해야만 하는 운명적인 직업적 특성 때문이다. 남들은 불길을 피해 뛰쳐나오는데 오히려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진정한 영웅들의 숭고한 헌신에 많은 관객들은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방화복(防火服) 아닌 방수복(防水服)을 입고 방화 장갑이 아닌 목장갑을 끼고 화염 속을 걸었던,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는 가슴을 쳤다.



대한민국 ‘소방의 역사는 홍제동 참사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참사를 계기로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가 조명되며 장비나 근무 여건 등에서 조금씩 개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소방관들은 2교대 근무로 한번 출근하면 24시간 동안 하루 평균 7회 이상 현장에 출동했다. 구조 작업에 필수적인 방화복조차 지원받지 못한 채 화마에 맞섰다.

부상을 당하더라도 간병비와 진료비가 지원되지 않거나 하루에 6만 원 선에 그쳐 자비 치료를 해야만 했다. 6만 원도 뇌 손상이나 사지 마비 등 ‘간병 1등급’ 판정을 받은 경우에만 지급됐고 3등급은 4만 4760원을 받았다.

교대 근무 방식 개선, 생명 수당 인상 등 소방 당국의 꾸준한 변화 움직임 속에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4월 1일 지방공무원 신분이던 소방관은 47년 만에 국가공무원으로 전환됐다.

일선 현장에서는 인력과 장비난에 숨통이 좀 트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전환 5년째로 접어든 지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소방 분야 인사와 예산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 권한으로 그대로 남겨둔 탓에 ‘무늬만’ 국가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방 안전 예산의 국비 일부를 안정적으로 지원받도록 하는 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나머지 한정된 지방재정으로는 소방 조직 운영에 한계가 있고 이원화된 지휘 체계로는 현장의 혼선만 초래하는 실정이다.

소방관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죽고 다치며 병들어가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4~2023년 10년간 소방 활동 중 위험 직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소방관은 40명이다. 업무 중 부상을 당한 공상자 수까지 더하면 2023년에만 1336명의 소방관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과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들에게 밑도 끝도 없는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영웅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빌었을 관객들의 기도가 늦었지만 하늘에 닿기를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 분열과 갈등, 극단적인 이념 전쟁으로 점철된 정치권에도 전달되기를 소망한다. 다시 한번 순직한 영웅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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