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둔 이맘때가 되면 트레이더조나 코스트코 같은 미국의 대형 마트에는 꽃 냄새가 가득하다. 연인 또는 아내에게 선물할 꽃을 신중하게 고르는 남자들의 꽃 쇼핑은 미국에서는 익숙한 광경이다. 하지만 올해는 자칫하면 이 로맨티스트들이 무역 전쟁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송환을 거부한다는 이유를 들어 콜롬비아에 25~50%의 관세 부과로 위협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체 수입에서 콜롬비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불과하다.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서도 경제 규모가 4위권 수준인 콜롬비아와 미국의 무역전쟁은 우리에게는 너무 먼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개별 품목을 들여다 보면 그 파장은 미국 시장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한다. 그만큼 글로벌 무역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콜롬비아는 전 세계 2위의 꽃 수출국으로 미국에서 판매되는 꽃의 약 3분의 2가 콜롬비아산이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주변은 연중 일정한 기온과 높은 일조량으로 화훼 재배에 최적화된 입지로 꼽힌다. 콜롬비아가 수출하는 꽃의 70%를 미국이 흡수하고 나머지는 유럽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로 보내진다.
콜롬비아가 트럼프에게 항복하면서 9시간 만에 사태가 종료되기는 했으나 만약 폭탄 관세가 부과됐다면 전 세계 화훼 산업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미국의 농업 전문 매체들은 “높은 미국 관세에 직면하게 되면 콜롬비아 수출 업체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고 이는 잠재적으로 글로벌 꽃 무역 패턴을 변화시켰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콜롬비아 꽃 파동의 직격탄을 맞을 국가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였다. 콜롬비아는 한·콜롬비아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해 이미 상당량의 꽃을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 2023년 한국 화훼 수입량의 약 40% 콜롬비아산이다. 이 때문에 국내 화훼 농가의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만약 트럼프의 관세를 피해 콜롬비아가 수출 물량을 대거 아시아로 돌렸다면 우리 화훼 산업의 생존을 위협할 이슈가 될 수 있었던 셈이다.
트럼프는 1일(현지 시간) 멕시코와 캐나다·중국을 겨냥해 동시 다발적인 관세전쟁을 선포했다. 콜롬비아와는 경제 규모를 비교조차 할 수 없고 한국 기업들도 대거 진출해 있는 거대한 북미 3국의 관세 치킨 게임이 우리 경제에 연쇄적으로 미칠 파장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우리 수출의 기둥인 미중 양국 간의 무역전쟁은 말할 것도 없다. 규칙도 없고 동맹도 없고 언제 어디로 튈지도 알 수 없는 미증유의 무역전쟁이 우리를 덮쳐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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