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수시모집을 마감한 지난 13일 의대에 7만 명 훨씬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상위권 N수생이 대거 가세했기 때문이다. 내년 의대 정원은 올해보다 1500여 명 늘어난 4500여 명이지만 이번 수시 모집 인원은 총 3010 명이다. 하지만 올 1학기부터 집단휴학에 들어간 의대생들의 유급이 확정될 경우 내년 예과 1학년은 7500여 명이 수업을 듣게 된다. 의대 정원이 3000여 명이었던 것에 비해 2.5배나 늘어나며 콩나물교실이 되는 것이다. 의대에서 실습 시설과 교원 확보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면 내년에 전공의와 전문의 배출 숫자는 역으로 큰 폭으로 감소하게 된다. 많은 의대생들이 예과 2년·본과 4년 과정을 마치고 4~5년 간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가 되는데 순환고리가 끊기기 때문이다. 현재 전공의의 의료 현장 복귀율은 10% 안팎에 그치고 있다. 결국 의대 증원을 통해 필수의료·지역의료 살리기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당장 의료현장에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현상으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환자들이 적지 않은 게 심각한 문제다. 최근 부산에서는 공사장에서 추락한 근로자가 여기저기 응급실을 찾다가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광주에서는 대학 내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학생이 대학병원에 응급전문의가 없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대학병원 수술실도 절반이 문을 닫는 등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연말·연초가 되면 의료 현장의 붕괴 현상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할 수도 있다.
이제는 상대가 무너질 때까지 출혈 경쟁을 하는 치킨 게임을 멈추고 저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 등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고 글로벌 의료경쟁력을 유지하자는 대의 앞에 정부와 의사단체의 입장이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 한 발씩 양보해 ‘여야의정협의체’ 같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의사단체의 주장대로 내년 의대 증원을 철회하거나 최소한 조정의 여지가 있느냐 여부가 관건이지만 이 부분은 이미 수시 접수가 완료돼 쉽지 않다. 이를 되돌릴 경우 입시 현장에 닥칠 메가톤급 혼란과 사회적 파장을 감당하기 힘들다. 결국 내년 의대 증원의 경우 의사들이 보기에 불합리하더라도 이제는 대승적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갖는 게 순리다. 대신 정부가 당초 연 2000 명씩 5년간 1만 명의 의대 증원을 추진키로 한 것에 대해 감축을 요구하는 게 보다 합리적이다. 사실 의대 증원 숫자와 관련, 그동안 국민과 전문가 사이에 “과학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았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된 것은 대통령실과 정부의 책임도 크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의사들을 집단이기주의의 대명사라고 치부하지 말고 그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세워줄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강국을 구축하기까지 의사들의 헌신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그동안 강공 드라이브와 함께 많은 예산을 들여 당근책을 썼지만 ‘의사들이 왜 꿈쩍도 안 할까’ 라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올 봄까지만 해도 대체로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박수를 보내던 국민들이 의료공백 사태로 인해 마음을 바꾸고 있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비상진료체제가 원활히 가동되고 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낸 것처럼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최저시급 조금 넘게 받으면서 뼈를 갈아 넣었던 전공의들이 올 초부터 집단이탈하면서 의료 현장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들도 2020년 문재인 정부의 의대 증원(매년 400명씩 10년) 계획을 총파업으로 무산시켰던 것처럼 진료거부를 전가의 보도처럼 써서는 안된다.
이제는 국민의 목숨이 위태롭다. 대통령실, 정부, 정치권은 여야의정협의체 출범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서되 의사단체도 전제조건만 고집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상대탓만 하는 것을 멈추고 윈윈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실, 여야 정치권, 의사단체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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