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교관이 접촉사고를 낸 뒤 경찰의 음주 측정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러시아대사관 소속 외교관 A 씨가 전날 오후 8시 46분께 서울 중구 서소문동의 한 도로에서 택시와 접촉사고를 냈다. 당시 A 씨에게 술 냄새가 난다고 판단한 경찰은 음주 측정을 시도했지만, A 씨는 면책특권을 주장하며 측정을 거부했다. 이후 A 씨는 현장에 도착한 러시아대사관 직원에게 인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면책특권은 비엔나협약 제29조에 따라 외교관은 외국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해당 국가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경찰은 A 씨의 면책특권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한편, 도로교통법상 음주측정 거부 혐의로 입건할지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한편, 외교관이 음주운전을 한 뒤 면책특권을 주장하며 풀려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11일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 소속 외교관 한 명이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운전을 하다 경찰의 음주측정을 1시간가량 거부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외교관임이 확인되자 면책특권으로 풀려났다.
이에 외교부는 지난해 11월 13일 대사관 관계자를 초치하고 음주운전 재발 시 해당 외교관에게 자진 출국 권유 예정임을 통보하기도 했다.
음주운전 뿐만 아니라 주한 외교관들의 폭행 등 강력범죄까지도 면책특권이 적용돼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외교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주한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저지른 사건·사고는 47건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외교부가 주한대사를 초치한 건은 1건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책특권으로 인해 외교부 측이 할 수 있는 조처는 해당 대사관에 재발 방지 요구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번 러시아대사관 직원의 음주측정 거부와 관련해서도 외교부 측은 해당 주한대사관과 소통을 하고 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한 조처를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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