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들이 아홉 살 때였다. “아들이 어떻게 하면 책을 읽을까”라는 고민을 듣던 한 신문사 선배가 본인의 비법을 알려줬다. 아들에게 신문을 주면서 기사 맨 밑에 있는 아버지 이름(바이라인)을 찾을 때마다 용돈을 주라는 것이다. “아빠 이름을 찾느라 기사를 조금이라도 읽는다니까. 아빠 일도 이해할 수 있고.” 첫날은 이 방법이 통했다. 아들은 꽤 심각한 표정으로 신문을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겼다.
며칠 후 아들에게 다시 신문을 건넸을 때 일어난 반전은 지금도 아찔하다. 아들은 신문 첫 장부터 여러 장을 움켜 쥐고 휙휙 넘겼다. “이렇게 빨리 넘기면 아빠 이름을 어떻게 찾냐”고 묻자 아들은 “아빠 기사는 앞쪽(앞면)에 없고 뒤에 있던데”라고 답했다. 신문은 앞면(종합면)을 단독 기사나 중요한 이슈를 다룬 기사로 채운다. 신문을 읽히려다 기자로서 능력까지 들킨 ‘앝은 수’의 말로다.
아홉 살 아들과의 일화가 떠오른 것은 공직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닮아서다. 아들이 아빠 의도와 정반대로 신문을 읽은 것처럼 ‘럭비공’ 같은 정책이 꽤 보인다. 정부는 3월과 7월 범부처 대책으로 ‘빈일자리 해소방안’을 두 번 발표했다. 재정 일자리 사업은 전체 예산 가운데 상반기에만 70%를 몰아 쓴 다급한 정책이다. 그런데 A 부처는 몇 년이 걸릴 노후 위판장의 현대화 사업을 안으로 내놓았다. B 부처는 자율주행 로봇을 연구해 의료 폐기물 현장에 도입하겠다며 느긋했다.
노동 개혁 과제인 근로시간제 개편안도 마찬가지다. 개편안은 장시간 근로 못지않게 정부의 메시지 혼선이 우려를 키웠다. 개편안 발표 이후 대통령·대통령실·여당 모두 방향이 다른 입장을 내놓은 탓에 원안의 취지와 목표가 희미해졌다. 8년 만에 감소로 돌아선 국가 연구개발(R&D) 내년 예산안도 그랬다. 발표 이틀 뒤 정부는 5년간 미래기술 인력 6만 명이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정책 순도는 공직사회에 달렸다. 그리고 공직사회가 만든 정책 모순은 ‘지시의 모순’이다. 그런데 지금 공직사회에 대한 비판은 원하는 대로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공무원 열의와 사명감 부족으로 쏠리고 있다. 공무원은 정책이 흔들린 근본 이유를 돌아보지 않는다. 공무원노동조합은 내년 보수가 2.5% 올라 실질적인 삭감이라며 거리로 나왔다. 지난해 부처들은 5년간 정원 5% 감축안을 맞추느라 허둥댔다. 젊은 공무원들은 공직사회가 갑갑하다며 떠나고 있다. 내년에는 한 치 앞도 모를 총선이다. 이 와중에 공직사회의 경고 성격인 2주간 복무 점검이 이뤄진다. 아홉 살 아들도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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