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현대차(005380)그룹은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자동차 판매 3위에 올랐다. 총 684만5000대를 팔았다. 현대차그룹 앞에는 일본 도요타그룹(1048만3000대), 독일 폭스바겐그룹(848만1000대) 두 곳 밖에 없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615만7000대), 미국 제너럴모터스(GM·593만대9000대), 스텔란티스그룹(583만9000대) 등 내로라 하는 글로벌 자동차 그룹들은 지난해 현대차그룹보다 차를 못팔았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자동차 판매 ‘톱10’에 처음 든 때는 2000년(250만1518대·10위)이다. 이후 꾸준히 순위를 올리면서 2010년엔 미국 포드를 제치고 5~6위권을 유지했다. 2020년 4위로 순위를 끌어 올렸지만 2021년 다시 5위로 미끄러졌다. 그러다 1년 만에 순위를 두 단계 끌어올리며 글로벌 ‘톱3’ 자동차 메이커 지위에 오른 것이다. 최근 몇년간 상황만 놓고보면 ‘파죽지세’라 부를 만하다.
그렇다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도 현대차의 질주는 가능할까.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현대차가 개최한 ‘2023 CEO 인베스터 데이’ 내용을 뜯어보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장재훈 사장 “혁신 DNA로 전기차 톱티어 리더십 공고”
현대차는 이날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시장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했다. 장재훈 사장과 서강현 기획재경본부장 부사장, 김흥수 글로벌전략담당(GSO) 담당 부사장, 김창환 배터리개발센터장 전무 등이 발표자로 나서 중장기 전략에 대해 설명했다.
현대차는 이 자리에서 최근 완성차 시장에서 미래 전기차 주도권을 두고 전통의 업체와 신생 전기차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 전통의 완성차 업체로서 오랜 시간 자동차를 만들고 판매하면서 축적해 온 여러 노하우와 고유의 강점을 살려 유연하고 신속하게 전동화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중장기 전동화 전략 '현대 모터 웨이(Hyundai Motor Way)'를 적극 실행하기로 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현대차는 전동화와 미래기술에 대해 어떠한 글로벌 회사보다도 선제적으로 대응해 왔다"며 "앞으로 전동화 톱티어(Top-Tier) 리더십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대 모터 웨이'는 수많은 현대차 임직원들이 축적해 정립한 혁신 DNA가 구체화된 모습으로, 새롭고 지속가능한 수익 창출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30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 목표 200만대로 상향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포함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목표도 새롭게 제시했다. 올해 33만대 판매 계획에 이어 2026년 94만대, 2030년 200만대의 전기차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지난해 CEO 인베스터 데이 발표와 비교하면 2026년은 10만대, 2030년은 13만대씩 판매 목표를 올려 잡았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대차는 2023년부터 2032년까지 향후 10년 간 총 109조 4,000억원을 투자하는 중장기 재무 계획 가운데 33%에 해당되는 35조 8,000억원을 전동화 관련 투자비로 책정해 현대 모터 웨이 실행을 적극 뒷받침하기로 했다.
이 같은 판매 목표가 달성되면 현대차·제네시스의 전기차 판매 비중은 올해 8% 수준에서 2026년 18%, 2030년 34%로 차례로 상승할 전망이다. 특히 2030년 주요 지역(미국·유럽·한국) 내 전기차 판매비중은 53%에 육박한다. 2030년 미국 시장에서 전체 자동차 판매의 53%에 해당하는 66만대를 전기차로 판매하게 된다. 같은 기간 유럽에서는 전체 판매의 71% 수준인 51만대, 한국에서는 37%인 24만대를 전기차가 차지하게 된다.
2세대 플랫폼 개발 등 ‘현대 모터웨이’ 공개
현대차는 글로벌 전기차 판매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전동화 전략인 ‘현대 모터 웨이’도 공개했다.현대 모터웨이는 △'통합 모듈러 아키텍처(IMA) 도입 △전기차 생산 역량 강화 △ 배터리 역량 고도화 등 3가지 상세 전략을 골자로 한다.
통합 모듈러 아키텍처는 현행 플랫폼 중심 개발 체계보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 절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지금까지의 개발 체계에서는 동일한 플랫폼을 쓰는 차종끼리만 부품 공용화가 가능했다. 선행 개발하는 공용 플랫폼 부품도 23개 수준이다.
하지만 통합 모듈러 아키텍처 개발 체계에서는 전 차급 구분없이 적용할 수 있는 86개의 공용 모듈 시스템의 조합을 통해 차종이 개발된다.
예를 들어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하는 ‘아이오닉 5’와 내연기관(ICE) 플랫폼을 활용한 파생 전기차 ‘코나 일렉트릭’은 현재의 개발 체계에서는 모듈 호환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통합 모듈러 아키텍처가 도입되면 모터, 배터리뿐만 아니라 인버터, 전기전자 및 자율주행 등 핵심 전략 모듈 13개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E-GMP를 이을 '2세대 전용 전기차 플랫폼'은 통합 모듈러 아키텍처 개발 체계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2세대 EV 플랫폼은 중형 SUV 차급 중심의 현행 E-GMP 대비 공용 개발이 가능한 차급 범위가 소형부터 초대형 SUV, 픽업트럭, 제네시스 브랜드 상위 차종 등을 아우르는 거의 모든 차급으로 확대된다. 현대차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현대차 4종, 제네시스 5종의 승용 전기차를 2세대 전용 EV 플랫폼으로 개발해 내놓기로 했다.
2세대 전용 EV 플랫폼은 5세대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와 고효율·고출력 모터 시스템 등 파워일렉트릭(PE) 시스템 탑재를 목표로 개발된다. 앞으로 각형 NCM 배터리를 포함해 폼팩터 다변화와 경제성, 안전성 등이 장점으로 꼽히는 리튬인산철(LFP)배터리 적용도 추진된다.
투 트랙 전략으로 전기차 생산역량 극대화
현대차는 전기차 생산 역량 강화를 투 트랙으로 진행한다. 기존 내연기관 공장을 전기차 생산 라인으로 전환하고 전기차 전용 신공장도 차질없이 건설해 나갈 계획이다.
먼저 현대차는 기존 내연기관 생산라인을 전기차 생산이 가능한 혼류 생산 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공장을 EV 생산이 가능하도록 전환하는 것이 신규 공장 건설과 비교할 때 시간적, 비용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의 완성차 업체로서 현대차가 가지는 강점으로 꼽힌다.
앞서 현대차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가 생산 라인에 각각 투입된 울산공장과 아산공장은 500억~1,000억원 수준의 투자와 한 달 간의 생산 라인 변경 작업의 결과로 현대차의 핵심 전기차 생산기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내연기관 차량과 전기차 병행 생산을 통해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한 생산량 조절이 가능하다. 기존 공장을 활용하는 방안은 공급망 관리 및 지역 경제 생태계 유지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존 내연기관 공장에 전기차 라인을 적용하는 방식은 한국 외에도 미국, 체코, 인도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며 “향후 현지 수요 증가를 고려해 추가 현지 라인 전환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기존 생산공장을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전기차 수요가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시장에 별도의 전기차 전용 공장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해외의 첫 전기차 전용 공장인 미국 조지아 현대차그룹 매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2024년 하반기 양산 개시를 목표로 건설 중이다. 국내에선 2025년 양산을 목표로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이 지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이러한 전기차 전용 공장에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의 스마트 제조 신기술을 적극 도입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는 투 트랙 방식의 생산 역량 확대를 통해 글로벌 전기차 생산 비중을 올해 8%에서 2026년 18%, 2030년 34%로 확대하기로 했다.
주요 지역 별로는 전기차 전환 속도가 빠른 미국에서 현지 공장에서의 전기차 생산 비중을 올해 0.7%에서 2026년 37%, 2030년 75%로 확대할 계획이다. 유럽 공장에서는 2030년 54%까지 전기차 생산 비중을 높일 예정이며 한국에서는 전체 생산 중 36%를 전기차로 생산할 예정이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 등에도 9.5조원 투자
배터리 개발 역량 확보와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도 힘쓴다. 올해부터 향후 10년간 9조 5000억 원을 투자해 배터리 성능 향상 및 차세대 배터리 선행 기술 개발, 인프라 구축 등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안정적인 배터리 소재 수급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배터리 합작법인 공급용 양극재의 주요 소재가 될 리튬 공급을 위한 계약을 추진 중이며 리튬·니켈 등 전동화에 필수적인 원소재를 포함해 주요 소재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소재 업체와 다양한 협력구도의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다.
현대차는 나아가 유럽 내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향후 전기차 수요가 높은 지역을 고려해 신규 조인트벤처(JV) 설립, 기존 JV 증설 등을 고려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2028년 이후 배터리 소요량 70% 이상을 배터리 JV를 통해 안정적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장 사장은 “‘현대 모터웨이’는 수많은 현대차 임직원이 축적해 정립한 혁신 DNA가 구체화된 모습으로, 새롭고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의 원천이 될 것”이라며 "전동화의 시작을 알린 '아이오닉 5'가 역사적 자산인 '포니'로부터 영감을 얻어 탄생한 것처럼 올해 출시 예정인 '아이오닉 5 N'은 고성능 전기차로서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현대차의 유산을 계승하며 전기차 리더십을 확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