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분명 풍요로워졌는데 국제 정세는 소용돌이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장비를 못 사게 되자 희토류 금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BV)에 이어 스위스·독일·캐나다의 유력 은행들이 휘청거린다. 달러 패권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있다. 신뢰가 바탕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그만큼 기업 파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다. 상대적으로 위안화가 관심을 끌고 있다.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가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대책으로 떠오른다. 이에 대해 중국은 상당히 진전시킨 것 같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폭풍우가 닥쳐오는 것은 아닐까.
각국의 셈법도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중국은 정기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시진핑 주석 3기 인선을 마친 뒤 활발한 외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 앙숙이던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 및 팀쿡 애플 회장의 중국 방문이 있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논란 속에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이번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총리가 50여 명의 기업인을 대동하고 방중, 에어버스의 대량 거래가 성사됐다. 일본은 외교적 노력으로 제재 유예를 통해 러시아 석유를 수입했다. 우리만 K컬처니, K방산이니 하면서 너무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미중 갈등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처럼 명분이 좀 약해 보인다. 체제 경쟁의 구호는 더 많은 대중을, 더 많은 인민을 잘살게 해주는 것이었다. 지금의 행태는 생산자를 중심으로 한 소수 기득권 세력 보호로 비쳐지고 있다. 미국이 주창한 현 세계경제 질서는 규모의 경제에 의한 최소 비용, 시장을 통한 거래, 비교 우위에 따른 특화, 공헌한 만큼의 보상 등을 근간으로 구축됐다. 미국이 최대 수혜자다.
중국이 기술 탈취를 하고 불공정 거래를 일삼는다고 불만이다. 당연히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해당 기업을 제재하면 된다. 하지만 국가를 싸잡아 제재하는 것은 좀 민망스럽게 보인다. 리쇼어링정책은 세계 생산구조의 인위적 재편에 불과하다. 시장 논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생산자 중심적인 사고다. 손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미중 기술 갈등이 10년 이상 갈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세계 시장이 양분되면 경제 통상 국가인 우리로서는 정부뿐 아니라 기업들에도 치명적이다.
시진핑 3기 인선을 보면 발전 기세가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 같다. 핵심 인사는 공산당·정부(중앙 및 지방)·의회의 장관급 이상이 각각 30명, 총 120여 명이다. 이들은 시진핑 시대 이전부터 잔뼈가 굵어 20여 년 이상 적어도 5번 이상의 경쟁을 거쳐 그 자리에 올라갔다. 대학뿐 아니라 해외 연수나 유학, 이공계 특기 소지, 중앙과 지방 순환근무 등 능력이 검증됐다. 의식구조상으로도 문화대혁명의 영향권에 있을 1950년대 초반생은 시 주석을 포함해 딱 3명뿐이다. 평균 1960년대 초반생이 절대다수다. 이들은 개혁·개방의 열기속에서 단련된 인사들이다. 중국은 시 주석 시대가 지나간 후에도 자체 시장만으로 상당 기간 버틸 수 있다.
미중이 만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1972년 미중 데탕트는 많은 중국인을 절대 빈곤으로부터 구했고 인류를 2013년 1인당 소득 1만 달러의 풍요 사회 초입으로 이끌었다. 미국이 어렵다면 이번에는 중국이 도와줘야 할 차례다. 국유기업을 통한 국가자본주의의 추구, 과도한 민족주의, 영웅 심리를 앞세운 제국으로의 회귀 움직임 등 각종 의구심을 불식시켜야 한다. 물론 미국다움도 되찾아야 한다. 중국도 말로만 운명 공동체라고 외치지 말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분열로 치닫던 미국 프로골프투어(PGA)와 리브(LIV) 선수들이 마스터스대회에서 오랜만에 총출동했다. 훨씬 보기가 좋다. 미중이 협력하지 않으면 인류 존망의 위기를 겪을 수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시절 데탕트를 이끈 유일한 생존자 헨리 키신저 박사가 인류의 원로 역할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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