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부터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시행됐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것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DC형 적립금 중 80%가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맡겨져 있다. 장기적으로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면 원리금 보장 상품 비중은 줄이고 투자 상품 비중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여태껏 경험한 적 없던 생경한 제도를 받아들여야 하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해의 부족은 오해로, 오해는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디폴트옵션에 대해서 퇴직연금 가입자가 가장 오해하기 쉬운 몇 가지를 골라 정리해보자.
첫째, 디폴트옵션이 가입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가. 근로자가 제때 운용 방법을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용자나 금융회사가 마음대로 정해도 될까. 게다가 가입자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 금융 상품에 투자해야 한다면 이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럴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금융사가 사용자에게 다양한 사전 지정 운용 방법을 제시하면 사용자는 그중 적합한 것을 하나 이상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사전 지정 운용 방법에 대해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DC형 퇴직연금 규약에도 반영해야 한다. 금융사는 해당 방법의 자산 배분 현황, 위험, 수익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근로자는 제공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적합한 사전 지정 운용 방법을 하나 선택하면 된다.
둘째, 디폴트옵션을 선택하면 즉시 운용 방법이 바뀌는가. 아니다. 디폴트옵션은 어디까지나 DC형 가입자가 스스로 운용 방법을 정하지 않고 일정 기간이 경과했을 때 효력이 발생된다. DC형 퇴직연금에 처음 가입한 근로자가 2주 안에 적립금 운용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디폴트옵션이 발동된다. 기존에 DC형 적립금을 운용하던 금융 상품의 만기가 도래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만기가 도래하고 6주가 지났는데 가입자가 새로운 운용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디폴트옵션이 발동된다. 이 과정에서 금융회사는 만기 후 4주가 지났을 때 2주 안에 운용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디폴트옵션이 발동된다는 사실을 가입자에게 알려야 한다.
셋째, 디폴트옵션에도 위험자산 투자 한도가 적용되는가. 그렇지 않다.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적립금 중 70%까지만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그런데 위험자산 규제 한도를 디폴트옵션에 그대로 적용하면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자. 홍길동 씨가 DC형 퇴직연금 적립금 중 70%는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고 나머지 30%는 정기예금에 맡겨두고 있다고 치자. 그리고 디폴트옵션으로 주식 편입 비중이 40%가 넘는 혼합형 펀드를 선택했다. 이때 홍 씨가 정기예금 만기가 도래하고 6주가 지났는데도 만기 자금 운용 방법을 정하지 않아서 디폴트옵션에 따라 만기 자금을 혼합형 펀드에 투자하면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초과하게 된다. 반대로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지키려면 디폴트옵션을 작동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디폴트옵션에는 위험자산 투자 한도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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