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선 이후로 택배대리점 일이 극도로 어려워졌습니다. 정부가 택배노조 편만 들어주는 탓에 대리점주들만 숨통이 막힌 셈이죠. 정부가 제대로 중재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노조를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택배대리점 점주 이모(40)씨의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도 김포의 한 택배터미널. 1일 이곳에서 만난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관계자는 분향소에 마련된 고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장례식장과는 별도로 차려진 탓에 분향소를 찾는 조문객들은 많지 않았지만 전국 택배 대리점주들이 보낸 360여개의 근조화환이 도로 옆으로까지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화환에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얼마나 힘드셨을까’, ‘억울해서 못 보낸다’ 등의 추모메시지가 적힌 띠가 걸려있었다.
분향소에서 만난 동료 대리점주들은 고인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과 함께 정부와 노조를 향한 원망을 쏟아냈다. 한 동료 대리점주는 고인이 전국택배노조 소속 배송기사들과의 갈등이 불거진 지난 5월부터 도움을 요청해왔다고 전했다. 이씨와 함께 일하던 택배기사들은 4월 말부터 수수료율을 기존 9%에서 9.5%로 올려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택배기사들은 임금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 배송 건수에 따라 돈을 가져간다. 이씨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택배기사들은 5월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에 가입하고 배송을 거부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고, 노조원도 12명까지 늘렸다. 노조 소속 기사들과의 갈등이 심화하자 배송이 지연되는 경우가 늘었고, 결국 이씨는 가족들까지 동원해가며 직접 택배를 배송했다. 동료 점주가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에는 노조 소속 기사들이 이씨를 비아냥거리는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쌓여가는 택배가 늘어나자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기사들은 업무량을 늘려가며 이씨를 도왔다. 그러자 노조원들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이씨와 비노조원들을 압박했다. 택배 지연이 계속되면서 이씨는 노조원들이 배송하지 않고 쌓아놓은 물품을 대체배송으로 처리하려 하자 노조원들은 본인들의 물품을 탈취했다며 이씨를 ‘절도죄’로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다.
대리점주들은 노조와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동안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 동료 대리점주는 “법적인 절차만 제대로 지켜졌다면 이번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원들의 단체행동은 법적으로 불법쟁의에 해당하는 만큼 이씨가 비노조원들을 통해 택배 물품을 처리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씨와 사무실 직원은 고용노동부에 해당 문제를 논의를 했지만 고용부 측은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대리점연합회 관계자는 “고용부가 대리점주와 노조 사이에서 중재를 해줘야 하는데 노조만 약자라고 생각해 일방적으로 노조 편만 들어줬다”며 “결국 본청과 노조 사이에서 대리점주들만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고 토로했다.
이씨의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은 유족들만 자리를 지킨 채 적막한 분위기였다. 유족 측 변호인은 “갑작스러운 일을 당해 유족들의 심적 고통이 매우 큰 상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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