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 통화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같은 입장이 중요하다"며 "공통의 목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정상은 아울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포괄적 대북 전략’을 조속히 마련하자는 데 합의했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25분부터 57분까지 32분간 통화하며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양 정상 간의 통화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지 14일 만에 이뤄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 전략’을 공언해온 가운데 이번 통화에서 구체적인 대북 해법까지는 논의되지 않았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 간 ‘같은 입장’을 언급한 것은 독자적인 남북협력에 속도를 내는 우리 정부를 의식한 발언으로도 해석된다. 한미 안보 당국은 최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연합 훈련 등을 둘러싸고도 미묘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울러 쿠데타가 벌어진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즉각 복원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문 대통령은 이에 공감했다고 백악관이 이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갈등’의 첫 시험대로 미얀마 사태가 떠오른 가운데 ‘민주주의 동맹’을 중심으로 한 중국 견제에 우리가 동참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한미 정상은 또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이 역내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외교가에서는 한미일 삼각 공조 복원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한일 갈등 개선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우리 시각으로 이날 오전 이뤄진 한미 정상 통화에서는 미얀마 쿠데타 문제와 한미일 협력 문제가 비중 있게 논의됐다.
특히 미중 갈등의 첫 시험대로 떠오른 미얀마 문제를 바이든 대통령이 먼저 꺼내든 것은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동맹'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아울러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에 공감했는데 이는 ‘한일 관계 개선’을 당부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양 정상은 이날 △한미 동맹 및 한반도 문제 △한미일 협력 △미얀마 문제 △기후변화·코로나19 대응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강 대변인이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전략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강조하는 선에서 통화가 매듭지어졌다. 가급적 조속한 시일안에 ‘포괄적인 대북 전략’을 마련하자는데도 양 정상은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만 “한국과 (미국의) 같은 입장이 중요하다”면서 한미 공조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는 미국의 대북 전략 설계 전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 등에 나서는 것에 대한 미국 측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도 분석된다. 청와대는 그러나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공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두 정상은 아울러 미얀마의 쿠데타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민주적인 방식을 통한 문제 해결에 뜻을 같이했다. 백악관은 특히 “두 정상은 미얀마의 즉각적인 민주주의 회복 필요성에 동의했다”면서 양 정상이 미얀마 문제를 논의한 점을 부각시켰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얀마 사태가 불거진 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통화한 해외 정상이 문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강조한 백악관의 이날 발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진단했다.
중국과 가까운 미얀마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가운데 미얀마 사태 해결 과정에서 한국에 반중(反中) 연대 동참을 요구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한반도를 벗어난 지역에서의 한미 공조가 강조된 것에는 동맹 범위를 확장시키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고 진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 문제도 주요 화두로 꺼내들었다. 강 대변인은 “양 정상은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이 역내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가 더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날 통화에서는 다만 위안부, 강제징용 배상 등 한일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 현안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앞서 이뤄진 미일 정상 통화에서처럼 양국 간 안보 협력 문제는 이날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일 정상은 지난 통화에서 일본에 대한 미국 핵 전력 등 제공 의지 등을 재확인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일본·호주·인도 등 4개 국 간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논의했다. 반면 이날 청와대의 브리핑에서는 주한미군 문제나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의 안보적 역할 등에 대한 언급은 공개되지 않았다. 백악관은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linchpin·린치핀)인 한미 동맹 강화에 대한 약속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한미 정상 통화가 이뤄진 것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2주 만으로 전임자들에 비해서는 다소 늦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두 정상은 30분 이상 폭넓게 대화했고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했다는 점을 유념해달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을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 및 다자주의에 기여하는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한미 동맹을 계속 발전시켜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윤홍우 기자 seoulbird@sedaily.com, 허세민 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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