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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841년 제2차 전비해전

英 철제증기선에 中 참패

2차천비해전에서 영국 함포에 청의 정크선이 박살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완강하던 청의 방어선은 영국의 과학과 기술에 무너지고 말았다./위키피디아




1841년 1월 7일 오전 8시, 청국 광둥성 주강 삼각주. 영국 함대가 청군의 정크선과 지상 포대에 함포사격을 퍼부었다. ‘제2차 천비(穿鼻) 해전’이라 불리는 이 전투에서 영국은 청의 대형 정크선들을 단박에 깨고 강안에 배치된 11개 포대를 하나하나 무력화시켰다. 전투는 정오께 끝났다. 영국은 38명만 부상당한 반면 청나라는 277명이 죽고 467명이 부상을 입었다. 포로도 100명이나 잡혔다.

혼비백산한 청의 흠차대신 퀴산은 보름 뒤 영국에 홍콩과 광저우 일부를 내주고 배상금도 지불하겠다는 가협약을 맺었다. 도광제를 비롯한 청 조정은 현장의 합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은(銀)을 하사할 수는 있으나 서양 오랑캐에게 영토를 줄 수 없다’는 청의 입장을 확인한 영국은 병력을 증파하고 전선을 넓혔다. 아편전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1842년 3월 끝난 아편전쟁에서 청은 영국의 모든 요구를 들어줬다.

영국의 힘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던 2차 천비해전 직전까지 청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전 흠차대신 린쩌쉬가 구축한 주강 방어선 덕분이다. 1차 천비해전(1839년 11월)에서 영국의 작은 무장상선 2 척이 청 정크선 29척 중 26척을 파괴한 이후 린쩌쉬는 전열을 새로 짰다. 서양제 화포 300문을 도입해 강안 포대에 배치하고 미국제 증기선까지 사들였다. 주강 방어선에 막힌 영국은 과학과 기술에 기댔다. 막 건조한 철제 증기선 네메시스호을 투입한 것이다.



동인도회사가 발주하고 영국 해군이 운용한 네메시스호는 처음부터 아시아용으로 건조된 함정. 갯벌과 모래톱이 많고 강의 수심이 낮은 아시아에서 운용할 목적으로 홀수를 낮추고 대형 선회포탑과 신형 로켓포까지 달았다. 영국은 운도 좋았다. 명중률이 떨어지는 로켓포까지 쏘는 대로 정확히 맞았다. 반대로 청은 모든 게 틀어졌다. 화공을 펼치자는 지휘관의 견해를 묵살하고 정면 승부를 펼쳐 참패를 겪었다. 급히 확보한 미국 증기 범선은 운용할 인력이 없었다.

‘청은 늙은 호랑이일 뿐’이라고 확인한 열강은 이권을 빼앗는 경쟁을 펼쳤다. 청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꼴을 지켜본 일본은 변혁을 서둘러 열강에 맞설 수 있는 실력을 길렀다. 반면 조선은 청의 패전 소식마저 눈 막고 귀 막은 끝에 망국을 자초하고 말았다. 180년 전 천비해전은 옛날 얘기가 아니다. 힘이 강해진 중국이 마약 유통을 강요한다면 영국은 뭐라 답할 것인가. 미국의 금융이론가이며 경제사학자인 윌리엄 번스타인은 ‘무역의 세계사’에서 오늘날 미·중 무역분쟁의 뿌리도 아편전쟁에 있다고 봤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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