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을 날려 저유소에 불이 나게 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이주노동자의 진술거부권을 침해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해석이 나왔다. 경찰이 이주노동자의 신원을 언론에 공개한 것도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의 의견을 밝히고 고양경찰서과 경기지방경찰청장에게 해당 경찰관에 주의 조치하고 소속 경찰에게 관련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진정인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로 경찰이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A씨를 피의자신문하면서 반복적으로 ‘거짓말 하는 거 아닌가요?’라며 진술을 강요했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저유소 인근에서 풍등을 날리다가 저유소에 불이 나 117억원의 피해를 발생시켰다.
인권위가 A씨의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찰관이 A씨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총 123회 ‘거짓말’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이미 답변했음에도 ‘거짓말 아니냐’고 반복하는 경우가 60회, 거짓말인지를 묻는 질문에 답변했음에도 다시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 경우가 20회, 이와 무관하게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한 게 32회로 집계됐다. 자백을 강요해 정상적인 신문과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A씨가 공적인 인물이 아닌 데도 수사기관이 개인정보를 언론에 제공하는 것도 무죄추정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 측은 “경찰관의 피의자 신상정보 등 공개로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무관한 이주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했다”며 “실화의 가능성에만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게 해 안전관리 부실 문제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도 초래했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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