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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은행 경쟁력 회복하려면 '先산업 後규제'로 패러다임 바꿔야"

■이석근 서강대 석좌교수

과거지향적 낡은 규제 틀로는 4차산업혁명 대응 못해

금융권 고임금·저효율 구조 여전...핀테크 등 혁신 더뎌

인터넷銀 중위험 고객 발굴토록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금융당국 규제본능 못버리면 주무부서 교체도 검토 필요

이석근 서강대 석좌교수는 국내 금융업이 정부의 간섭에 길든 탓에 혁신성과 차별화 욕구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융합이 생명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규제도 개방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2년 전인 지난 2017년 4월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영업을 시작했다. 1호 인터넷은행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2년 사이 고무적인 외형성장을 이뤘다. 출범 첫 달 26만명이던 가입자 수는 올 3월 기준 98만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여수신도 4조원을 훌쩍 넘어 초기보다 3배나 불어났다. 석 달 뒤 출범한 카카오뱅크 역시 예상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시장의 전망처럼 기존 은행들을 자극하는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은산분리 규정을 완화하는 특례법까지 만들어졌고 올해 중 제3의 인터넷은행 탄생이 예정돼 있어 기대가 크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은행의 경쟁력이 나아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인터넷은행도 여전한 규제에 막혀 증자 일정에 차질을 빚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인 1998년 구조개혁기획단 은행평가위원으로 은행 퇴출 작업에 참여하고 인터넷은행 설립에도 관여한 이석근 서강대 석좌교수를 최근 만나 인터넷은행을 비롯한 국내 은행 산업의 현주소와 과제, 해법을 들어봤다.

-IMF 위기 당시 국내 은행들의 상태는.

△자산건전성과 수익성 모두 심각하게 나빠진 상황이었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관치금융 탓이 컸다. 정책금융이 많다 보니 IMF로 산업 기반 전체가 위기에 몰리자 위험자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로 인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과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퇴출이나 합병이 불가피했다. 이전까지는 정부가 은행장뿐 아니라 임원들까지 임명하면서 이자율을 통제하고 산업대출을 조정하는 등 은행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은행들은 그 대가로 수익성을 등한시한 경영을 해도 면죄부를 받았다. 한국 금융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국제금융환경의 중심에서 점차 밀려나게 된 이유다. 세계 은행 순위(2015년 기준)에서 중국은 톱5에 3개나 포함된 반면 우리나라는 50위권에 단 하나도 없는 게 대한민국 은행업의 현주소다.

-지금은 나아지지 않았나.

△IMF를 거치면서 우리 은행들도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자본시장이 성장하면서 기업들의 직접 금융능력이 개선됐다. 1960년대 정책금융에 기대 성장하던 때하고는 기업들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 중심이던 은행 대출구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기에 6대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평균 70%에 육박하는 등 주주와 시장의 감시가 강화되기도 했다. 그만큼 수익성 개선에 대한 요구가 세졌다. 반대로 정부의 입김이 과거에 비해 줄어든 면도 있다. 특히 핀테크 등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전문은행의 등장으로 전통 은행업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래도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천편일률적인 상품에다 지점 위주의 안일한 영업이 여전해 고임금·저효율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 은행의 경쟁력은 경제 규모와는 맞지 않게 한참 뒤처져 있다. 국내 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자산수익률(ROA) 등이 지속적인 하락 추세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여기에는 경직된 노사관계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핀테크라는 신성장동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고민하기보다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혁신적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정부의 간섭에 길든 탓에 혁신성과 차별성에 대한 욕구가 떨어져 있는 것도 문제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관치금융이 여전하다. 지난해 하나금융지주 사건에서도 봤듯이 지주사 회장이나 은행장 등 경영진 선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

-전통 은행업을 자극하기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이 허가됐는데.

△인터넷은행은 금융 산업에서 4차 산업이 바로 접목될 수 있는 영역인데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 늦은 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출범 후 2년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은행권 전반에 금리와 수수료 인하 경쟁을 유발하고 있고 씨티은행의 사례처럼 지점 감축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일자리 측면에서 보면 고민할 부분이 있지만 시대 변화를 생각하면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에 따른 금융비용 감소로 저효율 구조가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인터넷은행이 가세하면서 기존 은행 문턱에 막혔던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이 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출범 시 기대했던 ‘메기 효과’가 상당 부분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9월 국회에서 통과된 은산분리완화특례법은 인터넷은행과 금융 산업 발전을 위한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

-특례법 통과에도 증자 차질 등 극복해야 하는 난관이 수두룩하다.



△은산분리 완화는 수많은 문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지금의 규제와 감독 행정은 인터넷은행이 성장하는 데 있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내외부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인터넷은행은 주요 공략 대상이 중위험고객이기 때문에 태생적인 성장 한계와 리스크 관리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성장을 지속시킬 수 있는 해결책은 통신이나 포털 등의 고객 데이터 발굴과 분석을 통한 신용평가 시스템 구축이다. 이는 기존 위험고객 관리뿐 아니라 기존 은행 등에서 거르지 못한 신규 고객 발굴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게 가능하도록 정부가 개인정보보호법 등 규제를 풀어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잇따른 대출 중단 사태와 케이뱅크의 대주주 적격심사 중단 등을 통해 인터넷은행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아직 많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제3, 제4의 인터넷은행이 순항할 수 있겠나.

△앞으로 출범할 인터넷은행은 케이뱅크 등의 시행착오를 본 만큼 이를 건너뛰고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일본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배구조가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혁신성이 강한 기업이 참여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들의 혁신적 서비스와 상품이 자산운용·보험상품 등 복합상품으로 확대되면 그 파장은 은행권을 넘어 더욱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케이뱅크·카카오뱅크가 처한 어려움을 보고 인터넷은행 참여 자체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내부요인이 아니라 통제하기 힘든 외부요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게 정책과 규제로 성장의 걸림돌이 된다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은행이 발전하지 못하면 결국 해외 핀테크 산업에 국내시장이 잠식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해법은.

△은행업이 낙후됐다는 것은 규제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금융 산업 경쟁력이 70위다, 80위다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금융 규제가 70위, 80위라는 것이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금융도 지금 융복합화가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규제도 이런 흐름에 맞춰 개방적으로 바뀌는 게 중요하다. 인터넷은행에 대한 규제를 기존 금융권과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관점에서의 정책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선(先)산업 후(後)규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융합과 혁신이 핵심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에 닥칠 부작용을 예단하는 선제적 규제를 하거나 과거의 잣대로 산업을 옥죄는 과거지향적 규제, 법에 열거된 것 이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를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래서는 신산업을 부흥시킬 수 없다. 핀테크 육성에 팔을 걷는 영국 금융감독원장이 몇 년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더 이상 2년, 3년 전의 사건이나 원장에 집착하지 않고 융합산업을 하는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만나 어디에 성장동력이 있는지, 기회 요인이 있는지를 듣는 감독을 하겠다.” 이에 비해 우리 금융당국은 아직 “흥행에는 관심 없다” “소비자 보호하는 게 소임”이라며 금융감독의 당위성만 강조하고 있다. 두 나라 감독당국의 규제에 대한 시각이 이렇게 180도 다른 것이다. 영국은 흥행·성장·미래에 방점을 찍지만 우리는 과거·규제·부작용 등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선산업 후규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영국·일본 등 핀테크 산업과 인터넷은행이 활성화돼 있는 나라들을 보면 모두 ‘선산업 후규제’ 국가들이다. 산업 활성화를 먼저 생각하고 최소한도로 사후에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우리 금융감독당국의 마인드가 바뀔 수 없다면 인터넷은행이나 금융 산업 활성화는 금융감독원이 주무부서가 될 게 아니라 산업을 활성화하는 쪽이 맡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감독하는 사람에게 진흥까지 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는가. 금융 활성화와 관련해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하고 금감원은 금융 시스템 안정과 건전성에 한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감독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정책 ‘운전자(주무부처)’를 교체해보자는 얘기다. 정말로 정부가 금융 산업이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이렇게 과감하게 주무부서를 바꿔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스스로 하지 못하면 남이 머리를 깎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한국 은행 산업의 경쟁력은 현재와 같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철 지난 규제 프레임을 탈피해야 할 때가 됐다. / shim@sedaily.com

He is...

1963년 태어나 서강대 경영학과와 미국 시카고대 MBA 졸업 후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액션츄어 아시아태평양지역 자본시장 총괄대표와 아서디리틀(ADL)아시아 대표, 롤랜드버거 한국지사 초대 지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7년까지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과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IMF 위기 때인 1998년에는 구조개혁기획단 은행경영평가위원회 위원으로 시중은행 퇴출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고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과정에서도 자문 역할을 했다. 현재는 서강대 경영학과 석좌교수로 사회적기업센터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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