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문제로만 여겨졌던 감정노동이 기업의 실제 부담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감정노동으로 기업에 다양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감정노동을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도한 감정노동은 노동자의 이직·퇴사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의 효율성이 낮아지고 감정노동수당 등 직접적인 비용으로 이어진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근로자 피해를 예방하지 않으면 갈수록 감정노동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노동자 40%가 감정노동…기업에 비용 발생=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한국 사회 감정노동 실태와 개선 방향’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임금노동자 1,770만명 중 41.8%(770만명)가 감정노동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정의에 따라 비율은 조금씩 다르지만 최근까지도 전체의 40% 안팎이 감정노동자라는 추산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감정노동을 사실상 비용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와 달리 해외에서는 감정노동이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보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그랜디 산업조직심리학과 교수는 감정노동이 노동자들에게 직무소진(job burnout)과 신체 증상 유발 등 비용을 유발한다고 분석했다. 그랜디 교수는 “감정노동은 노동자의 이직률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저숙련직에서조차 수익과 매장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며 “개인뿐 아니라 기업에도 간접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기업은 이 같은 감정노동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인 로레알의 경우 2006년 처음으로 감정노동수당(3만원)을 신설했는데 2009년 5만원, 2011년 8만원으로 빠르게 상승했다. LVMH는 7만원의 감정노동수당과 감정노동휴가를 제공하고 있다. 부산노보텔·엘코&잉크·부루텔 등도 감정노동에 따른 휴가나 수당을 주고 있다.
◇조직 보호 못 받고 정신건강상태도 심각=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가 금융·우정·국민연금·지하철·유통·의료·건강보험에서 고객 대면 업무를 맡은 노동자 1,0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괴롭힘 실태조사 분석’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하루 평균 근무 중 고객 대면 노동시간 비율은 66.2%였다. 이 중 고객 응대 과부하·갈등 위험군은 31.6%에 달했다. 감정노동에 따른 감정 부조화와 손상 위험집단도 47.6%나 됐다. 소속별로는 유통 부문이 66.9%로 가장 높았다. 고객 대면 응대 비율이 50~80%인 경우 위험집단 비중은 48.6%, 80% 초과인 경우 58.6%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조직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위험한 근로자는 52.5%나 됐다.
감정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악화도 심각하다. 120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의 자살 충동과 우울증 등은 일반 시민보다 두 배가량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해에는 통신사 콜센터에서 일하던 고교 실습생이 직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자살한 사건도 발생했다. 김혜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은 “감정 부조화와 손상을 겪고도 조직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감정노동자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고객상담이 주 업무인 전화상담원들에게 방어권을 제도화하는 조치가 필수라는 주장이 나온다. 권혜원 동덕여대 교수는 “감정노동의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는 과도한 성과통제 시스템 자체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고객의 폭력에 대한 감정노동자 방어권(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을 제도화하고 관리자와 상급자의 폭언과 인격모독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청 책임 강화하고 직무 스트레스 경감 노력 병행돼야=감정노동자보호법에 따라 사업주는 고객 응대 근로자가 고객의 폭언·폭행 등으로 건강장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장해가 발생하면 업무를 일시 중단시켜야 한다. 예방조치는 ‘폭언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문구 게시 또는 음성안내’인데 이 정도로는 고객의 ‘갑질’을 근절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사업주가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금액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현행법이 하청업체 소속이 많은 감정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콜센터는 도급 형태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일감을 받는 입장에서 대기업의 요구사항을 맞추려다 보면 무리한 요구가 나오고 하청업체는 노동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대기업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해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몇몇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하청업체 감정노동자 보호 지침을 만들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은 감정노동자 보호와 현장 직원들의 고객 응대 업무를 돕기 위해 대고객 매뉴얼인 ‘존중받을 용기’를 제작해 모든 지점 고객상담실에 배포했다. 이 매뉴얼은 ‘악성 컴플레인 제기 고객’의 판단 기준과 경고, 경찰 신고 같은 대응 방안을 담았다. 신세계백화점도 매장에서 폭언·폭행 등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판매사원을 고객으로부터 즉시 벗어나게 하고 매장 보안팀과 경찰에 신고하도록 대응 매뉴얼을 바꿨다.
전문가들은 또 직장문화를 개선해 직무 스트레스를 경감하는 것도 감정노동자를 확실히 보호하기 위한 필수조치라고 입을 모은다. 직장 내부 갑질과 조직적 감시가 해소돼야 감정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의 법적 개념을 규정하고 이에 대한 예방·처벌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혜란 보험연구원 연구원은 “사업주는 고객 응대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근로자를 도와주는 공식적 절차를 수립해야 하며 직장 내 상사·동료들도 문제 해결에 적극 협조하는 기업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혁·변재현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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