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평양정상회담은 파격적인 의전으로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양산했다. 21발의 예포와 문재인 대통령의 90도 각도 인사와 평양시민과의 깜짝 접촉, 특히 양 퍼스트레이디의 활발한 행보 등 평양 만남은 풍성한 화제를 던져줬다. 북한 사회주의의 핵심가치를 상징하는 노동당사에서 개최된 회담은 이번 회담의 무게감을 가늠하게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솔직하고 겸양을 갖춘 화법, 평양시민들의 열광적인 환영 등은 주목 대상이지만 회담의 주변 사항이지 본질적 사안은 아니다. 평양으로서는 1, 2차와 마찬가지로 각종 시설과 장소 방문 등으로 자신들이 동북아의 정상국가라는 사실을 외부세계에 충분히 주지시켰다. 하지만 2박3일간의 회담은 결국 합의문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다.
우선 전체적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지난 2007년의 10·4선언에 버금갈 만큼 다양한 문제를 논의했다. 6개 분야, 14개 항목이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철도·도로 연결 등 경협, 질병 분야의 협력, 이산가족 상봉, 평양예술단의 오는 10월 서울 공연과 심지어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개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공동개최 등을 합의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답방한다는 내용까지 합의문에 포함했다. 분단에 따른 민족의 이질감을 극복하며 군사적 긴장 완화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확보하려는 양 정상의 노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이산가족의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 문제 등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역시 이번 합의의 아킬레스건은 비핵화 부분이다. 싱가포르 합의 이후 북미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비핵화의 ABC 부분인 신고·사찰 및 검증과 종전선언을 맞교환하는 거래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7월3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요구사항을 전달했을 때 김영철 통전부장은 강도 같은(gangster like) 요구라고 비난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오히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도록 설득해줄 것을 요청받았다는 후문이다. 북한은 결국 비핵화에 대해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새로운 진전은 없었다.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는 항목이 비핵화의 핵심 파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구를 사찰(inspection)로 해석하고 환영한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북한은 세 가지 핵, 과거에 제조된 핵무기, 현재의 핵물질, 미래 핵을 제조하는 시설 중에서 미래 핵만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합의문을 통해 공언했다. 지난번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동창리 미사일발사대 철거처럼 비핵화에 큰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시 환영 의사를 표시했지만 이 조치로 미국이 종전선언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난망이다.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는 항목은 북한의 복심을 추정하게 한다. 미국의 상응조치는 당연히 종전선언일 것이다. 북한은 철저하게 의제를 쪼개 거래하는 살라미(salami) 전술을 구사한다. 미래의 핵을 종전선언과 교환하는 거래는 미국 입장에서 수용불가일 것이다. 미국은 최소 핵무기와 물질 및 미사일 등의 종류와 내용이 담긴 리스트와 일정(dead line)을 제시해야만 종전선언을 할 것이다. 평양과 워싱턴의 간극은 동문서답 수준만큼이나 크다. 남북정상회담은 역시 비핵화 이슈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이제 비핵화 문제는 결국 10월 중으로 예상되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다뤄질 것이다. 공이 평양과 워싱턴 코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서울의 입장은 편치 않다. 연내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을 열기로 합의한 부분은 비핵화가 진전을 보이지 않을 경우 한미 간에 불협화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군사합의서 부분은 군사적 신뢰가 미흡한 상태에서 자칫하면 안보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다.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이 균형감 있게 진전돼 합의문 이행이 원활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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