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통 의혹’으로 낙마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인선 문제를 놓고 미국의 신구 정권이 또다시 정면 충돌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플린 전 보좌관 임명에 앞서 제기된 경고를 두 차례나 무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시리아 미사일 공격을 계기로 다소 잠잠해진 트럼프 행정부와 러시아의 유착 여부가 정가의 화두로 재부상하는 분위기다.
8일(현지시간) NBC방송 등 미 언론들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의 트럼프와 만나 플린 전 보좌관을 고위직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직접 전달했다고 복수의 측근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대선 이틀 뒤인 지난해 11월10일 약 90분간 트럼프 당선인과 독대해 플린의 모스크바 유료강연 문제와 국방정보국(DIA) 국장 시절의 업무능력, 이슬람교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 등 여러 이유를 들며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플린 전 보좌관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DIA 국장으로 일했던 인물로 지난해 12월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대사와의 통화에서 대(對)러시아 경제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하고도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에게 거짓으로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 보좌관 임명 24일 만인 지난 2월13일 경질됐다.
샐리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도 이날 상원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플린 전 보좌관이 러시아로부터 협박당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정부 출범 직후인 1월26일 백악관 측에 전달했다”면서 “시급한 우려를 가능한 한 빨리 백악관에 전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예이츠 전 대행은 도널드 맥건 백악관 법률고문을 만난 자리에서 플린이 펜스 부통령에게 거짓 보고를 했다는 정보와 함께 이 같은 경고를 전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 커넥션’을 가장 잘 파악한 인물로 알려진 예츠 전 대행이 이 사안에 대한 공식 발언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마지막 법무부 부장관으로 일하다 트럼프 정부 초기 법무장관 대행을 지냈다.
오바마 진영의 공세에 백악관은 플린이 지난해까지 오바마 행정부에서 비밀정보취급 재인가를 받았던 점을 들어 검증 책임은 오바마 진영에 있다고 반격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최고 비밀취급 인가를 보유한 국방정보국 수장의 배경을 다시 조사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에 “예이츠 전 대행의 백악관 보고 직후 국가 기밀정보가 곧장 언론에 유출된 이유를 그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라는 글을 올리며 역공을 시도했다.
하지만 미 정가는 국가 안보의 최전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받고도 백악관이 빠른 대응에 나서지 않았던 점을 일제히 지적하고 있다. 실제 플린은 예이츠 전 대행의 보고 이후에도 18일간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다 부통령에 대한 거짓 보고 여부가 언론에 공개된 뒤 경질됐다.
야당인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와 러시아의 밀착 관계가 플린 전 보좌관을 넘어 더 진행됐을 가능성을 확신하는 분위기다. 현 행정부에서 러시아 유착 의혹을 받은 인물은 트럼프 대통령 외에 그의 아들과 사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윌버 로스 상무장관,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등 행정부 고위직을 망라한다. 민주당 셸던 화이트하우스(로드아일랜드) 상원의원은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러시아와 돈독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해왔다”며 “대통령 및 행정부 요직 등의 밀착 관계에 또 다른 의문을 던지는 증언”이라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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