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시장’이라는 뜻을 지닌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은 수년간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올 초만 해도 위안화와 유가 급락 등으로 신흥시장은 크게 흔들린 바 있다. 그러나 연말이 다가오는 현시점에 우리는 신흥시장의 괄목할 만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선진국과 신흥국 증시의 올해 수익률은 각각 1.9%와 13.9%로 신흥국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반전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부에서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지연되면서 유동성 환경이 연장된 수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동성 환경만으로 신흥국 증시가 강세를 보인 것이라면, 선진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이 공격적으로 진행된 최근 5~6년간의 신흥국 부진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신흥국 약진의 보다 본질적인 이유로서 유가와 금리의 반등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초 20달러대로 급락했던 유가는 공급과잉 우려가 정점을 지나면서 반등에 성공했다. 확장 일변도의 통화정책으로 금리 하락 압력을 제공하던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 장기화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이 두 상황의 조합은 수년간 글로벌 경제에 부담을 제공했던 디플레이션 우려를 완화시키고 반대로 인플레이션 회복에 대한 기대를 형성시키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와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주체들은 주요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향후 금리 하락과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비용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면 반대 상황이 전개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자금 조달이나 투자 비용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에 투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감은 경제 주체들의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수요 회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교역량 확대와 같은 긍정적인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다. 최근 신흥시장의 상대적 강세는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다.
이와 함께 현시점에서 신흥시장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글로벌 요인은 유럽의 융커 플랜(유로존 경기부양을 위해 마련된 380조원 규모 투자 계획), 중국의 일대일로(중국·아시아·유럽을 아우르는 대규모 경제 벨트 구성 계획), 미국의 인프라 투자 공약과 같은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확대된다는 점이다. 이는 원자재 수요와 교역량 확대를 가속화시켜 주로 수요의 최초 공급자인 신흥국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친다. 결과적으로 신흥시장은 더욱 매력적인 시장으로 거듭나 글로벌 경기의 회복을 선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시장은 다양한 이유로 상당한 불확실성에 갇혀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감으로 신흥시장은 이미 반등을 시작했고 이제 앞으로 약진에 보다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서명석 유안타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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