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AP통신이 입수한 WHO 내부 문서들에 따르면 WHO는 지난해 6월 초 에볼라가 극도로 치명적이며 머지않아 서아프리카 전체로 퍼질 수 있다는 현장 요원들의 보고를 받고도 두 달가량 손을 놓고 있었다.
아프리카 현지에 파견된 WHO 중견 요원들은 당장 비상사태를 선언할 것을 본부에 건의했으나 WHO는 사망자가 1천 명에 육박한 8월 8일에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WHO는 초기 대응이 소홀했다는 외부의 비판에 직면하자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가 전례 없이 빨랐고 현지의 자원과 정보도 부족한 탓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AP통신이 살펴본 WHO 내부문서들에서는 이 기구의 지도부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관계 당사국들의 분노를 사고 이들 국가의 광물자원 개발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현지 무슬림의 성지 메카 순례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선언을 미루고 있었다는 정황도 밝혀졌다.
WHO 전염병국장인 실비 브리앙 박사는 비상사태를 선언하는게 좋겠다고 건의한 한 직원에게 6월 5일 보낸 이메일에서 비상사태 선언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지적하면서 “현재로서는 다른 외교적 수단을 가동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고 답했다.
그 닷새 뒤에 마거릿 챈 WHO사무총장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곧 말리, 코트디부아르, 기니비사우로 확산할 수 있다는 메모를 받았다. 이 메모는 그러나 비상사태 선언이나 긴급대책위 소집이 “적대적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단서를 달고 있었다.
이에 앞서 사태 초기인 3월 25일 WHO 아프리카국장이 받은 메모에는 보건요원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고 도시로 확산하는 등 예사롭지 못한 조짐들에 대한 보고가 속속 기록돼 있었다.
4월 중순께 WHO 아프리카 사무소의 에볼라 전문가는 제네바 본부에 기니의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 여럿이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는 당혹스러운 소식을 보고했다.
그는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굵은 글씨로 “우리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이같은 정황에 대해 WHO 전직 직원들과 외부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전염병 전문가 마이클 오스터홀름은 교통혼잡을 가져올까 걱정돼 소방서에 신고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전직 WHO 연구원인 매튜 캄와 박사는 “비상사태 선포가 효과가 없다면 뭐하러 비상사태를 선포하는가”라고 반문했다.
WHO 에볼라 대책팀장인 브루스 에일워드 박사는 초기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비상사태가 선언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3천명의 병력을 보내고 100개 병상을 갖춘 병원 10여개를 지어줄 것을 약속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에볼라 치료센터 건설을 약속하는가 하면 중국과 쿠바는 각각 59명, 400여명의 의료진을 파견했다.
/디지털미디어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